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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정도.. 되었고 제가 읽고 싶어서 업로드 합니다

오늘자로 올리는 게시글들은 1월 말일에 삭제합니다.

 

 

 

 

 

 

 

 

 

 

 

 

 

 

 

 

 

 

 

 

결말은 언제나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변하지 않을 사실이며 증명이다. 그것이, 그와 자신의 관계가 아닌가. 언제나 바뀌지 않을,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미묘한 관계다.

- 절대 불변의 법칙

 

 

 

 

 

 

 

 

 

 

 

 

 

 

 

◈ ◈ ◈

 

 

술잔을 기울리던 손이 여유롭게 술병의 입구에 닿았다.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는 소리는 퍽이나 어떤 소리를 연상할 듯 오묘한 소리를 내었다. 달그락 거리는 와인 잔의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올라가면 그 남자의 얼굴이 보이기 마련이다. 쇼파에 몸을 조금 더 기대어 여유롭게 몸을 뻗댔다. 익숙함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술을 나누는 이 시간은 다른 차원과 공간에 있는 것만큼 다른 것이다. 그 기분을 알까? 잔을 내밀며 오묘하게 퍼지는 꽃향기와 다른 내음의 냄새를 맡았다.

“마음의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이 그리워할 수도 있는 맛이라 생각 할 수 있을지도.”

“아아, 스페인.”

“역시 눈치가 빠릅니다. 포도의 원산지가 스페인이죠.”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저 남자는 굉장히 센스와 판단력이 좋다. 그 판단력을 믿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오묘한 향과 익숙한 향이 입 끝에 맴돌았다. 맴돌던 것은 다시 혀끝을 파고들어 끝 맛 까지 퍽이나 그리운 맛이었다.

“부른 이유가 뭔가. 내 생각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아닌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은 듣는 이의 시선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여유롭게, 향을 음미하던 손가락이 탁자로 향했다. 손가락 하나 놓칠 수가 없는 긴장감이다. 조심해야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난 말입니다. 상황파악을 빠르게 잘하는 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나 유능하면 할수록 더더욱 그런 편이지요. 경, 요점만 말하겠습니다. 내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정중히 부탁하는 바입니다.”

어쩌면 와인을 더 마셔야할 지도 모른다. 속이 차갑게 바람이 불어댔다. 속을 태울 것이 필요하다. 알콜이건, 무엇이건 어떠한 것이 차가운 안에 필요했다. 우스꽝스럽게 속에 와인을 퍼부어댔다. 속에 알콜이 조금이나마 들어가자 정신을 그제야 차렸다.

“내가? 말이 되는 소릴, 우리의 관계는 딱 여기 아니었나. 변변치 않은 술친구. 아, 가끔은 이런 고급 와인이 쳐 올라오기도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나. 윌라드 크루그먼.”

“그러한 관계가 우리 관계의 지향점이긴 했습니다만, 경이 그걸 그렇게 칭해줄 줄은 몰랐던 걸 보면 아직 까지 모르는 것이 확실했군요.”

“목적이 결국은 너도 그거냐, 내 무엇이 탐이 나나.”

“흥미가 돋는 것은 경이 아니라면 우습지 않습니까? 누구나 그러하듯 나 또한 원하는 목적이 경임을 어찌 부정할지.”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상황을 이렇게 좆같이 만들 줄은 몰랐지.”

“원하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경이 부족한 것이 무엇임을 압니다. 이번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여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사비로 경의 연구비용을 대리로 청구해드리죠.”

“하?”

“그것이 부족하십니까? 경,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머릿속이 잠시 어지럽다. 그러니 목적은 그것이 아닌가. 똑같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생각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의 확답이 뻔하다. 그것의 답은 언제나 일관성 있게 거절과 거절이었다. 애석하게도 속이 조금씩 타기 시작했다. 알콜의 끝에 불을 붙인 듯 속이 탔다. 얼음을 찾기도 전에 열린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딱 한 항목을 추가하고 싶은데, 가능하나?”

“물론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

속에서 울컥하고 하나의 답이 튀어나왔고, 그 울컥거림의 끝은 끝없는 정적이었다. 그는 잠시 고뇌하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좋습니다. 경을 얻을 수 있다면야, 그 정도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술김에 내뱉은 말은 정적의 끝에서 이상한 답변을 내뱉을 뿐이다. 술, 술, 그토록 진하게 달았던 스페인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은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머뭇거리던 입과 입이 닿아 농밀하게 혀와 혀를 섞기 마련이었다. 와인 마냥 붉어진 얼굴은 말조차도 더듬거리는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그에게 왜 그것을 바랐을까. 돈과, 육체적인 관계. 그것을 바란 와인 한 잔이 문제였다. 마음이 맞는 사람에 대한 동경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원하기라도 했던 것인가.

술김에 나왔다고 했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그 문제는 무엇인지 도무지 무엇이라 칭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면 순간의 선택임에 분명했다. 눈을 감으며 그 순간을 느끼는 것이 전부가 된 것 이다. 이 순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고 자신에 대해서 자괴감을 갖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 ◈ ◈

 

 

아픈 몸을 들고 눈을 뜨며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빠진 것도 잠시, 꿈속에 걷는 것도 잠시였다. 손목의 손자국은 이렇게 선명한데, 테이블에 남긴 종이와 그리고 다른 것, 그다지 쓸모없는 종이 뿐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종이에는 은행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겠지.

화가 나나? 아니면 무엇이 더 남았나. 애초부터 이 관계를 요구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도 덤덤해지는 것일까?

남아있던 온기가 빠져나가기도 잠시다. 남은 것이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가. 후들 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샤워 부스에 들어가 찬 물에 머리를 식혀댔다. 이 기분 나쁜 오묘하고 미묘한 온도가 부디 떨어져 나가길 바라야했다. 그것이 옳았다.

그래, 그것이 옳은 것이었다.

빠른 판단력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지. 씁쓸하게 웃음을 흘렸다. 뚝뚝 떨어지는 찬물을 닦는 것도 잠시, 가장 먼저 한 것은 옆 테이블에 놓아진 수표를 손에 쥐고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따위 것이 잠시 눈을 흐렸을 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단 것처럼, 그렇게 바라는 사람이 확실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가지고 무슨 짓을.

 

후회를 해보아도 상황에 있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라 칭하랴. 결국은 그저 하룻밤의 실수라고 칭하면 될 일이었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머릿속에 답답하여 습관처럼 손을 뻗어 담배를 찾아댔지만 담배는 손에 있질 않았다. 옷가지에 남아있는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불을 붙여댔다. 차분히 생각해보자. 무슨 일이 생겼고, 이것을 어떻게 잘 해결해야할지, 늘 그랬던 것처럼 실수라고 말하면 될 일인지, 그 생각을 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정한 것 같았다. 머리는 여전히 엉망이고 생각도 여전히 엉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종이 쪼가리에 별 다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언제는 돈이 없어서 연구를 안 한 적이 있었던가? 우스운 일이다. 시끄럽게 문 앞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체크아웃 시간입니다!”

정신을 되돌리는 스위치와도 같아 옷을 껴입고 담배를 다시 물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조금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았다. 걷는 폼이 조금 웃긴 정도겠지. 그는 철저했다. 어떠한 곳에도 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퍽이나 실수치고는 완벽했다.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비벼댔다. 구차하게 굴지 말자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어버리는 꼴이 우습다. 그 철저함에 진저리가 가는 것도 잠시다. 모든 것을 생각하기도 잠시 체크아웃이라는 시간에 옷을 급하게 입어댔다. 밖에서는 뭐라 생각할까? 어쩌면 아무런 생각조차도 없겠지. 씁쓸히 서있었다.

“손님 체크아웃이라고요!”

그 소리에 그제야 몸을 급하게 움직여댔다. 팁을 많이 주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 ◈ ◈

 

 

그날 밤 이후 서로에 대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는 것을 꼽자면, 안정적인 지원이 확실했다. 덕분에 순조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가히 작품이라고 칭해도 완벽함을 뽐냈다. 가장 골치 아프게 움직여댔던 것이 꽤나 만족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한몫했다. 한 시름 놓았나. 책상에 엎어지듯 몸을 떨어트렸다.

그 날 이후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꿈이라도 되는 듯 아무 일 없는 서로의 사무적인 태도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머릿속에 남는 것이 미련과도 같아 기분이 괜히 더러워졌다.

“경이 내 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크고도 확실한 무언가가 말입니다.”

무언의 압박을 내어주는 모습이 퍽 낯설다. 그는 야망가다. 확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지고 실행하는 야망가다. 그것에 대해서 무엇을 대답하랴, 꽉 잠긴 목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 전부이니 말이다.

“지지하겠다는 것을 증명해달라는 거로군, 완전히 파악했다.”

문을 닫고 나갔다. 완벽한 태도, 그 태도에 웃음이 터진다. 철저히 이용하려는 태도에 응하는 것은 애석하게도 자신이 아닌가? 이용하고 이용하는 머릿속의 회로가 눈에 너무 잘 보여서 웃음이 절로 흘리다 못해 역겨울 지경이었다. 썩은 내가 여기까지 진동할 줄은 몰랐지. 순간의 감정이 무엇이라고 여기까지 와버렸는가.

어느 곳에 빠져있을 사람조차도 아니고 관계를 만들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나의 계기를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쉽다. 계기의 고리를 달고 하나 둘 씩 엮어간 것들이 어느새 큰 고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고리를 목줄과 같이 질질 끌려 다니는 투견이 애석하게도 본인이라는 것이 문제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건가.”

하나의 답을 위해서는 하나의 익숙한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별 일 없다는 듯이 대꾸하는 로라스의 말에 시끄러워 오히려 욕설을 내뱉을 뿐이었다.

“별 수 있나. 돈을 받은 만큼 일해야지. 그래야하지 않겠나.”

답지 않은 일이로군. 로라스가 뒤에서 속삭여댔다. 시끄러워! 오히려 빈축을 산다. 로라스의 말을 무시한 채로 실험에서 성과를 내보인 것. 가장 가벼운 무게로 최상의 것을 보이는 갑옷을 바라본다.

“그를 믿는가?”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라고 표현 해주어야하나, 자네가 그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확실한 궤변이야.”

“궤변이라.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네는 본디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로라스의 진중한 질문에 퍽하고 목이 잠겨버린다. 그래. 본디 그럴 이유조차 없지 않은가. 어이없게 피식하고 웃었다. 하룻밤의 정인가. 아니면 하나의 다른 것인가. 알 수가 없다.

“그러게, 나 또한 알 수가 없다. 로라스.”

“자네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면, 그 누가 답을 알겠는가.”

“그러게나, 말이다.”

로라스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애써. 아는 것 하나 없이 중얼 거리며 피식하고 웃을 뿐이다. 애써.

“달라지는 것은 없네. 아무 것도 없지.”

“로라스.”

“설령 자네가 그와 잘못된 거래를 했어도 자네는 영원히 다리오 드렉슬러 일세. 그 사실을 잊지 말게나.”

“퍽이나.”

다정한 그 말에 애석하게도 넘어가고야 만다. 그래 설령 잘못된 선택을 하건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괜한 의심이자 궤변이 따로 없다. 그의 말에 그제야 한숨이 넘어간다. 그의 말이 오로지 옳은 것 마냥 고개를 끄덕인다.

“넌 역시 좋은 조언자다.”

“그러한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니 너는 확실하다.”

그의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중얼거리며 낮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완벽한 믿음. 확실히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이었다.

“그에게 어떠한 것을 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렉슬러, 나는 자네가 결코 잘못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네.”

좋은 말이다. 좋은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애써 그 녀석을 뒤로 되돌려 보냈다.

“고맙다. 여러모로.”

“물론. 자네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명심해주게나. 난 언제나 자네의 선택을 좋아하거든.”

“퍽이나.”

그의 말을 뒤로 하고 웃음을 애써 흘려댔다. 퍽이나 좋은 녀석이나 다름없었다, 아 내 선택에 저런 절대적인 신뢰를 보낼 줄은 몰랐지. 그러나 로라스 내 선택은 너 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얼굴을 괜히 손바닥으로 감싸서 얼굴을 가려댔다. 나조차도 감히 그것을 예상할 수 없는데 네가 어찌 나를 이해할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글러먹었군.”

여러모로 글러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 받은 돈을 손가락으로 수를 세어가며 나중의 연구에 대해서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꼴이 퍽이나 글러먹은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세 번이면 이 실험은 완전히 끝이 날 것이다. 세 번의 순간이라면 연구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가장 완벽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 다음은? 생각할 수가 없다. 성공한다면 지금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돈의 문제와는 별개로 다른 나쁜 마음임에 분명하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마음이 무엇인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이미 가정이라도 있는 남자를 사랑하기라도 하는가? 감히? 내가? 알 수 없다.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생각들뿐이다. 가정에 그렇게 충실한 남자라면 목표가 있었다고 한들, 저를 안아서는 말았어야했다. 입을 맞추는 행위도 하지 않았어야했다.

단지 술김에 바란다는 이유로 그러지는 않았어야했다. 아무리 머리를 원한다고 그러한들 그러지 않아야할 이유와 생각들은 충분하지 않았나.

“제길-!”

그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온 것이 무색하게 하나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머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생각하는 것만이 머리가 아플 뿐이다.

욕지기를 내뱉다 한숨을 쉬었다. 아, 차라리 결혼을 하지 말지. 그랬더라면 몰려오는 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았을까. 그런 괜한 생각을 머리에 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그가 받아줄 생각? 그것은 착각의 고리나 다름없었다. 이 착각의 고리를 왜 스스로가 쥐고 멈추지 않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아, 정말 꼴사납고 멍청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변한 것은 없었다, 다만 태도의 문제가 애석하게도 나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사랑을 갈구할 바에는 조금은 구차해지자. 그 구차한 생각은 고리에 고리를 물고 점차 커져버렸다. 걷잡을 수도 없게 말이다.

“엿 같네.”

진정으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품에 안긴 그녀를 사랑해? 되묻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해? 너를 닮은 그 아이를 사랑해? 그렇다면 왜 나를 안았어? 단지 목적을 위해서? 단지 그것뿐인가?

애석하게도 그 질문에 대해서 답해줄 이는 없었다.

그 어디에도. 답을 내려주고 그것에 대해서 정의해줄 사람이 없었다. 이런 경우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혼자 판단해야하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전혀.

나는, 그를 감히 사랑하는가? 감히? 주제 파악을 그렇게 잘하는 주제에? 알 수가 없다. 그 알 수 없음에 비참해진다.

 

◈ ◈ ◈

 

 

“돈, 그걸 원해.”

그 집요한 단어는 그렇게 시선을 마주함에 있어서 당당해질 수 있었다. 돈, 그리고 육체적 관계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으니 그리도 당당해질 수 있는 거겠지. 이 씁쓸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오른다. 고작 이것 밖에 요구할 수 없는 것인가. 고작?

지금껏 살아옴에 있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던 제가 이렇게 비참해지며 생각조차도 이리도 짧을 줄도 몰랐겠지. 긴장감에 축축하게 젖은 손이 얼굴을 감싸댔다. 이 마음이 진심이 아님을 알 텐데.

“그것뿐입니까. 그렇게 속물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요. 다리오 경.”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연구의 비용은 네 생각보다 심하다는 것을 모르나. 이 연구의 결과가 네 어깨에 힘을 준다는 것을 모르나.”

“호오-, 연구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다량 살상용 무기, 최고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녀석이지. 이것의 효과 하나라면 얼마든지 네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정도까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좋습니다. 당신의 일에 대해서 다시 재고해보겠습니다. 얼마, 얼마가 필요하겠습니까?”

“최소, 회사의 재산은 거덜 난다고 봐야할 정도의 돈이 필요할 정도다.”

“저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짓을 함은, 네 스스로가 바라지 않았나. 내 머리를 원한다면, 그 기대에 충분히 보답하는 것이 내 일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다만 그것뿐이지요. 분명, 말입니다.”

글쎄 아니라고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다만 그것뿐일까. 네 탐욕을 채워주기 위한 방법의 하나일까. 그렇다면 윌라드, 네 탐욕을 채워주었다면, 나의 탐욕 또한 채워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을 감히 꾹꾹 검은 마음에 삼켜버린다. 그래봤자. 무엇이 달라지겠나.

“내 말은 여기까지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면으로 요청하지.”

“경, 그것뿐입니까?”

쿵, 하고 짓누르듯이 가슴을 누른다. 문고리를 잡던 손이 조금은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야.”

단지 그래, 그것뿐이다. 무엇을 더 하길 바라는가, 그 날과 같이 그런 실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혀끝을 가볍게 찼다.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닌가.

“단지. 그것뿐이지.”

입에 뱉어지는 말들이 어색하지만은 그것이 진실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진실이자 해답이 될 것이다. 가슴 속에 품은 오만한 생각들을 버린다.

결코,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이다. 결코.

또한 드러나서는 안 될 감정이다.

책상 앞에 환히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본 순간, 순간의 검은 마음을 치워버렸다. 아무리 이렇게 해도, 그는 돌아갈 곳이 있다. 추락할 곳을 생각하며 자리를 내려다보는 자신과는 다르게 돌아갈 곳들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 돌아가는 자리에 왜 없는가? 되물어 봐도 그는 답이 없겠지. 이미 정해진 답을 바꾸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

답안지의 답을 써내려가는 것만큼 쉬운 일이 지금까지 없었건만, 이번 답은 도무지 적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아예 적을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러니 더는 바라지 않기를 바라지.”

중얼 거리며 문을 황급히 닫았다. 작은 소리가 새어 들어갈까 뛰쳐나가듯이 몸을 뛰며 이 생각을 버려대고 싶었다. 관계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술 한 잔을 기우려대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니지만은, 당장이라도 다가가서 술을 마시자고 하고 싶었다. 허, 참. 어이없기도 하지.

이제 와서 무엇이 달라지겠어. 이제 와서.

터덜거리며 몸을 움직여댔다. 그저 결과물을 내비보이는 그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한심한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날의 밤을 그저 하나의 거래로 생각하자. 그러면 될 일이었다. 그 것이 그렇게 쉽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경.”

환청이라도 들리는 것 마냥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것을 확인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문을 열고 서있었다.

“와인, 마시고 가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으로-.”

그 눈빛 속에서 무엇을 읽었는지는 알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개를 단지 끄덕이며 닫힌 문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 가버리는 것뿐이었다.

착각하지 마, 단지 술이 먹고 싶었을 뿐이잖나. 비겁한 변명을 품고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비겁한 말이지만 경, 여러모로 재고해봤습니다만, 역시 서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면이 편하다고 한 건 나야.”

“경에게 오히려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 그러는가?”

바라보던 눈이 짙게 번져댔다. 와인 잔에 주륵 흘러가는 액체를 바라본다. 퍽이나 이 관계를 증명하는 것 같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눈빛이 절로 날카로워질 것 같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본다. 네가 뭘 알아? 어떤 것을? 더럽게 품고 있는 이 마음을 알아? 이 기분을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다만 질린 얼굴로 잔을 들고 있다는 것만을 인지했다. 덜덜 떨리는 손이 미끄러졌는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잔이 깨지는 소리와 와인의 깊은 향기가 퍼져댔다.

“그날은, 경의 실수와 내 실수겠죠. 오롯하게 말하자면.”

“닥쳐.”

본능적으로 떨어진 유리 조각을 치우려 손을 뻗었다. 손을 치며 손수건으로 바닥을 누르는 그의 모습을 쓰게 바라볼 뿐이다.

“우리는 다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결코 그럴 일은 없어.”

애석하게도 말이야. 손바닥에 작게 박힌 유리가 그것을 말하는 듯 했다.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고.

“경.”

“내가 하고픈 말은 전부 끝났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술을 두고 간다는 것은 예의가 아님을 알지 않습니까.”

알고 있다. 잔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 다른 잔을 쥐고 길게 쭉 마시어댔다. 시정잡배와 같이 술을 마시는 꼴은 퍽이나 제 생각에도 좋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어쩌면, 너를.”

어쩌면, 하고 싶었던 말을 눌렀다. 말은 눌러져 어느새 손바닥에 박혀 붉은 피를 흘려댈 뿐이었다.

“어쩌면 나를? 경, 경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알고 있다. 어린 아이처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바라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 어린애가 아니니 비겁한 수를 쓰는 어른처럼 행동 해야겠지.윌라드 크루그먼, 분명 그 날, 내 머리를 사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번엔 다른 거래를 요청하지. 내 몸도 사는 것이 어떤가. 아무 생각도 없이 말하는 답이 아니야. 그렇게 된다면, 옴짝 달싹도 할 수 없이 네 것이 되겠지. 어떠한 이윤이건, 어떠한 것들에서 말이야.”

“호오-.”

말 뿐인 서로의 흥미, 그리고 떨어진 시큼한 와인내가 똑똑한 머리가 멍청해지는 듯 했다.

“이 거래에 내가 응하면 당신은 제 것이 되겠군요. 어떠한 일에도, 또한 어떠한 것들에서도 말이죠.”

멍청해진 머리는 사리분별조차 하지 못한 채로 서로 마시던 잔을 내려두게 만들었다. 단 한순간도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그래. 지금은 멍청하다.

스스로가 멍청하게 새 장 속으로 들어가는 꼴이 아닌가. 헛웃음이 차올랐다. 이렇게 해서 그를 소유할 수 있을까? 가능이라도 했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물론이다.”

그 대답과 동시에 얽힌 시선과 모든 것들은 무엇이라 가히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의 웃음 어린 시선과, 그리고 그렇게 바라는 것의 내용이 담긴 서류에 사인을 남길 뿐이다. 관계에 있어서 꿈이라도 꾸지 말라는 듯 현실적인 내용이 담긴 서면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경, 무엇을 할지. 이제 알지 않겠습니까.”

그의 목소리에 홀린 것 마냥 시선을 따라 수염이 조금 닿는 턱을 잡고 숭고하게 입을 맞춰댔다. 깊은 수면을 가르고 금단의 과실을 문 것 마냥 달콤하다.

 

◈ ◈ ◈

 

다리오, 드렉슬러! 그는 그의 이름을 증오스럽게 외쳤다. 그 남자의 짓이 분명함에 당연했다. 손으로 쥔 신문을 쥐고 급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내 전부를 내어 주었으니, 나 역시도 전부를 가져갈 것이다.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댔다. 이런 관계를 어찌 만들었는데. 가벼운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었다. 절대로 변하지 않아. 절대로 변하지 않기에 그에게 이런 가벼운 장난을 하는 것뿐이다. 진정으로 안을 수 없다면, 그러할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것뿐이다.

마시는 와인의 향이 퍽이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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