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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가자 로라스.”
그 유혹적인 말을 나는 고개를 저어 반대의 의사를 내비 출 뿐이었다. 그 순간의 그의 표정은 조금은 실망한 듯 멋쩍게 웃었다. 다짜고짜 그런 소릴 해서 미안하다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아니었다. 나 또한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것이 아니기에 나는 너의 제안을 거절하고야 만 것이다. 드렉슬러가 등을 돌린 채로 걸어갔다. 헬리오스 회사를 등지고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단 사실은 변할 수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 할 수 없어. 지겹게도 돌아오는 족쇄는 멈추지 않았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대부분의 능력자가 그렇듯 후유증이 시작되었다. 무리하게 신체의 능력을 한계까지 꺾어서 사용한 하늘을 거스린 죄, 그 죄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헬리오스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이라고 공표했다. 연합과 지겨운 싸움이 끝난 것이었다. 기적적으로 끝난 전쟁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갑옷을 입고 싸울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지키던 것도 모두 끝이 나버린 것이다. 거짓말처럼 더 이상 그의 등을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모든 힘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가볍다고 생각했던 마상창의 진실 된 무게는 감히 생각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몰려온 것은 아니, 다가 온 것은 한 통의 편지이었다. 그와 함께 했다는 것을 죄로 물어 뒤집을 인간들이었다. 웃음기가 저절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인가…? 모두 다 사라져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리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다가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너도 가는 거야? 아쉽네.”
“조노비치 양.”
아쉽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조노비치 양이 물었다. 무슨 일로 그만 두는 것이냐고, 헬리오스에 조금만 더 머물러서 민간들을 마주하는 법을 익히라는 듯 그녀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그녀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녀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는 것들 때문에 전쟁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놈도 가더니, 결국 회사는 텅 비게 되는 건가?”
“여긴 조노비치 양이 있지 않습니까? 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입술이 말라 왔다. 입술이 말라서 갈라져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거짓말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죽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더 포장하고 포장해야 이 더러운 이름을 지울 수 있을까? 타라는 알겠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갔다. 짐을 정리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 것 만 같았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가 되어버린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었기 때문이다.
괜스레 투구를 매만질 뿐이었다. 이것도 저 것도 모두 드렉슬러가 자신에게 해준 것이다. 모두ㅡ 그와 함께 임을 다짐 했을 그 순간부터. 가슴이 미어질 듯이 아파왔다. 결코 그와 함께할 수 없는 이 추악하고도 더러운 이 이름 때문에 그와 함께 할 수 없다. 그의 등 뒤를 지켜주겠노라 약속하고 다짐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편지를 찢어버렸다. 돌아오라는 간결한 말투는 아버님이 작성한 것이 분명한 것이었다. 간결하고도 무언의 압박이 담긴 그 강압적인 말, 늘 그런 식이었다. 엇나가는 것은 관두 거라, 제명당한 아이 따위와 함께 어울리지 말라는 그 소리를 어긴 것이 이렇게 잘못한 것일까?
고개를 무릎에 파묻을 뿐이었다. 그저, 그 것뿐이었다.
- 2 -
“다시 하 거라.”
유년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로지 강압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각도가 틀어진다면 바로 날아오는 힘의 충격에 어린 몸으로 버티고는 했다. 오로지 완벽을 추구하는 강압적인 그 모습은 몇 번을 보고 보아도 이해 못할 법했다. 끝없는 힘의 충격이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개가 된 것 마냥 행동주의적의 사람이 된 것 만 같았다. 손을 들기만 해도 움찔거리는 공포는 아버지에게 당연한 만족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한 날이 끊임없이 다가왔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어린 맘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사람들이 바라는 가식적인 얼굴의 흔한 귀족가의 아들이 되어주는 것이 전부이었다. 그렇게 바라는 것만큼 그렇게 대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맘에도 들지 않는 여성과 더럽게도 긴 왈츠를 추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아들의 모습일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름을 말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숨이 막혀올 것만 같았다. 심장은 이미 두근거리다 못해 떨리고 있었다. 왜, 이런 숨 막힘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경련이라도 일어나는 듯 떨리는 입술은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알베르토, 로라스입니다.”
애써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부이었다. 속으로 나를 재고 또 재고 있겠지, 알베르토 가의 장남이라는 무기는 얼마든지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숨이 막힐 듯 풍겨오는 향수 향이 부담스럽다 못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벗어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만, 그만이라고 되뇌어 보아도 그만 둘 수 없었다. 나를 누군가 구원해주기를, 나를 누군가 지켜주기를, 그렇게 말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넓은 무도회장에 혼자가 되어있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아. 속이 쓰릴 만큼 아파오고 있었다. 이 문을 박차고 나간다면, 따귀가 날아오고 죽일 듯이 온 몸에 피멍이 가득 할 것이다. 이 찬란한 샹드리에 아래는 아름답지 않다. 그저, 빛을 비추는 공간에 불과하다.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시끄러운 소리가 샹드리에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주먹다짐하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고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누가보아도 싸움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파트너를 잡았던 손을 놓고 ㅡ 이 과정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영애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ㅡ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는 널 부러진 사람 하나와 위에는 와인을 뿌리는 사람이 있었다. 하필이면 쥐어 잡은 것이 레드 와인이었는지 바닥에 널 부러진 사람의 온 몸에는 붉은 와인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붉은 끼가 머물러있는 갈색의 머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일어나서 와인을 문질렀다. 끈적거려 라는 소리가 들렸다. 딱 보아도 날카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불렀어.”
간단한 이유를 말하고는 머리를 쓸어 넘기는 꼴이 어쩐지 미묘했다. 아버지, 저 사람도 결국은 아버지에 묶여있는 건가? 묘한 마음이 들었다. 뚝뚝 덜어지는 와인이 바닥에 흥건했다. 그의 걸음걸이마다 가득했었다. 주변이 이상하게 시끄러웠다. 주변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의 이름, 그가 왜 그런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그 길을 걷어차고 싶어 하는 특이한, 혁명가와 같은 사람이었다.
*******
그런 강렬한 인상을 가진 사내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기 전에 쉽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름,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걸음은 당당하고 굳세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그는 나를 모르고 지나치기 바쁜 사람 같았다. 다시 만난 것은 의외인 장소이었다. 사내자식들의 땀 냄새가 가득한 연무장에서 그를 만났다. 화려한 앞의 세계에서도 외면을 받던 이는 여기서도 외면받기를 충분했다. 소문에 의하자면 그는 굉장한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고는 했다. 선명한 눈빛이 그를 그렇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작 얼굴 한 번 본 것만으로 그와 아는 척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고 그도 그 곳의 일원처럼 녹아 내렸다.
그래, 그렇게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안차려?”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었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급하게 땀으로 미끌거리는 창을 바로 잡았다. 우연치 않게도 그와 대련 상대가 되어있었다. 원래는 동기들끼리 대련 상대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짝이 없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홀수인 인원 탓에 짝이 없던 것은 로라스 그 또한 같았다. 그렇기에 기수가 다른 둘이 결국 대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깊게 찔러오는 드렉슬러의 창을 겨우 막아냈다. 의외로 괜찮은 것을 본 것인지 드렉슬러는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 같았고 로라스는 묵묵히 다음 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괜찮네 라는 평을 받았다. 아마도 그가 보기에 알베르토 로라스는 ㅡ 여리 여리하고 왜소한 체형 탓에 기사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던 것 같았다ㅡ 생각보다 괜찮은 훈련을 해온 듯 했다. 다만 체형이 길고 마른 편이라 어디서든 우습고 어이없는 평가를 받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 이전에 알베르토라는 가문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 듯 했다. 정작 그와 똑바로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말은 더럽게도 많았다.
그렇게 대련이 천천히 종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연습용 창을 옮기는 것으로 대련은 마무리가 되었다. 흐르는 땀이 식기도 전에 로라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드렉슬러가 이리저리 눈대중으로 뭘 보고 있는 가 했더니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갸웃 거리기도 전에 선배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탓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인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다.
“괜찮냐?”
“무엇을 말입니까?”
“저 새끼 마음에 안 들면 얘들 패놓곤 해서, 이상하게 멀쩡하군.”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실례가 안 되신다면 가보아도 되겠습니까?”
정중한 로라스에 말투에 그는 그렇게 비켰다. 귀족 나으리 님이 비켜달라는데 비켜줘야지, 약간의 비웃음이 달린 말이었지만 로라스는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저런 말을 하지 않는 자격지심에 빠져있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던가, 시답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릿하게 손목이 아파왔다. 생각보다 힘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묵직하게 휘두르는 창에 중심을 잃어 넘어 질 뻔했다. 만만하게 볼 사람이 결코 아니었단 것이다. 그런 그가 왜 그런 평을 받는지, 그런 취급을 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리오 드렉슬러, 그에 대한 말은 충분히 많았다. 가문에 먹칠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은 연회의 레이디들에게 들었던 소식이었다. 그녀들이 말하기를 결코 그와 서약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흔한 귀족 아가씨들이 기사의 서약을 거절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평판은 영 좋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그가 왜 가문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듣기로는 다리오 가문이 드렉슬러를 묶어 두려고 무리하게 결혼을 진행하다가 대놓고 영애에게 모욕적인 어휘로 결혼이 무산 되었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다리오 가문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그에게 선포했다고도 들었다. 귀족의 이름만 유지시키고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고 들었던 내용은 사실이었던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 하지만 부럽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문은 그저 자신의 이름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자신처럼 묶어내는 족쇄가 아닌, 그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그는 그와 다른 사람이었다.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그만의 길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는 그가 그는 부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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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지났다. 어색하긴 하지만 그는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까지는 올라갔다. 아무도 그와 대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고정적으로 대련 상대가 되어있었다. 그것에 있어서 로라스는 수긍한 편이었다. 다른 이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있는 자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지 절반 정도 막았던 것에 이어 이제는 공격과 수비를 바꿔도 괜찮은 포지션이 나온 것이었다. 나쁘지 않는 조합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것은 대련이후 이었다.
“너, 키 컸냐? 뭔가 각도가 높아진 기분인데?”
“그렇습니까? 조금 그런 것도 같습니다.”
드렉슬러의 말에 그는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다음에 보자는 형식적인 말로 드렉슬러가 답했다. 아직까지는 그와 그의 관계는 흔한 선후배 관계일 뿐이었다. 물론 그 또한 그렇게 선을 그었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사람의 구분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신과의 선 또한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오히려 심할 정도로 굴었다.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는 조금 더 후의 일이었다. 드라군이 헬리오스에 소속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렸다. 그 소식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따로 단장과 따로 독대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그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입김이 거기까지 간 것인가 로라스는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독대 이후에 알게 된 것은 그가 속해있는 조만 능력자들로만 구성해놓았단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묵묵하게 창을 닦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 또한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질감? 자유를 가지고 있는 그와 같다는 동질감이 그를 감싼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어쩐지 기사 놈 치고 마른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그가 가지었던 큰 의문이 풀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라스는 실없는 웃음을 보였다. 누가 보아도 마른 체형이었지만 그가 가진 신체적 능력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만큼 뛰어난 것은 이미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묵묵하게 창을 닦고 있었다. 드라군에게 목숨과도 같은 창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굴어야 했다. 묘한 긴장감에 로라스는 숨이 조금 차올랐지만 천천히 호흡을 다잡았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온 몸이 긴장될 만큼 무서운 단어임을 다시 깨닫고 있었다. 막사를 세우고 출전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초조한 마음을 그렇게 애써 눌렀다.
*******
전쟁은 어린 그에게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이었다. 첫 날 그는 막사에서 구토할 정도로 심하게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그저 전쟁이라는 단어를 책으로 만 한명의 학생이었던 기사에 불과한 아이었단 사실이었다. 이제야 성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깨닫고 있었을 정도로 로라스는 심적으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만만히 보아선 안 되었다.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앞에 펼쳐지는 순간들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었다. 몇 십 명의 사람을 죽이고 손에 베어버린 붉은 색의 피는 몇 번을 손을 씻어 내어도 닦아 지지 않았으며, 문득 손의 냄새를 맡아보았을 때 속이 울렁거릴 것 같이 진한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며칠간의 공황상태가 지나서야 로라스는 그제야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심적으로도 그리고 육안으로도 보기에 지쳐보이었다. 겉으로 어른인 척 하던 그는 결국 속은 아직 덜 자란 애송이에 불과했다.
멍청한 놈,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습게도 심적으로 지친 로라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존재는 드렉슬러이었다. 어린 로라스가 생각하기에 그도 아직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산에 불과했다. 드렉슬러는 고작 그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느끼기에 그와 그 사이에 있는 벽은 그가 생각한 만큼 얇은 벽이 아니었다. 그 벽은 두껍고 큰 장벽이었다. 그 장벽은 그와 그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아무리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드렉슬러가 가진 '경험' 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것이 못됐다. 드렉슬러,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죄책감 또한 느끼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알베르토의 곁에 같이 남아있어 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구역질을 한 순간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가 보는 것은 아마도 어떤 식으로 이 '공포'를 알베르토가 넘어서는 것인지 가장의 최대 궁금사 인 것 같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거다. 애송아.”
“그래야겠죠.”
“그러다가 가서 뒤질 수도 있다고.”
뒤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드렉슬러의 표정에는 전쟁의 여운이 생각보다도 깊은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덜덜 떨리는 로라스의 손을 보던 드렉슬러는 자리에 일어나서 나가 본다. 라는 짤막한 말로 로라스의 막사를 나왔다. 저 고비를 넘는 것도 저 녀석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드렉슬러는 고개를 저었다. 드렉슬러는 아직 그가 처음 누군가를 죽일 때의 감촉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손에 닿은 꿰뚫는 감각이란 녀석은 여전히,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질 것이었다. 수없이 가지는 죄책감을 평생 온 몸에 가지고 가는 기사의 뒷모습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었다.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평생, 그가 들고 가야할 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다독여줘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한다는 사실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옆에 누군가의 다독임이 없다면 미칠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을 악용할 수도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그는 최선으로 알베르토를 배려하고 다독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를 다독여줄 자신은 별로 없지만은, 그래도 인생을 조금 더 살아간 사람으로서 약간의 배려를 해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깊은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 것을 벗어나는 것도 그 것을 이겨내는 것도 본인이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해도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다. 피 철갑이 되어있는 창만을 무겁게 바라볼 뿐이었다.
- 4 -
로라스가 속한 조가 전멸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간 곳에는 황폐한 공간, 쓰러진 전우, 그 사이에 유일하게 생존한 한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육안으로 누구인지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창기사가 창을 놓을 만큼 큰 충격을 받은 듯해 보이는 그는 약간의 공황상태이었다. 그동안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옆에서 도와주었던가, 겨우겨우 식사를 하게끔 만들어두었더니 그보다 더 큰 충격이 로라스에게 닥친 모양이었다. 몇 분 전까지 전우이었던 이의 시신을 잡고 오열하는 꼴에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네 녀석이 여기서 울 자격이나 돼?”
드렉슬러가 성을 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로라스가 앉아 있는 곳은 편하게 울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로라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드렉슬러가 보기에 로라스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정말이지 미안하지만 악의가 아닌 마음으로 로라스의 뺨을 후려쳤다.
천천히 로라스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그제야 로라스도 지금 그의 상황을 깨달은 것 같았다. 벽안의 눈동자가 급하게 주위를 보며 그의 창을 찾기 시작했다. 멱살을 잡은 것을 조금 강하게 풀었다. 그 반동에 휘청거리는 로라스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는 잔인해져야했다.
“여기가 무슨 소꿉놀이나 하는 곳이냐? 그런 어정쩡한 마음으로 뭘 하겠다는 거냐!”
드렉슬러의 말에 로라스가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눈물을 거둔 로라스의 눈빛은 아까보다 달라져있었다. 과연, 그래도 알베르토라는 건가? 아무리 연약해보여도 결국 그도 강인하고 강철한 알베르토의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마른 입술에서 나온 말에 드렉슬러는 안도했다. 지금은 정신을 차릴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도 그들의 위치가 발각된 것 같았다. 무거운 갑옷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 것은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드렉슬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라면 둘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왕실 호위대로 살아 올 수 있던 것은 정통한 그 말대로 옳은 창술을 했었기에 왕실 호위대로서의 지위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기에 드렉슬러는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세를 천천히 잡고 순간적으로 창의 회전속도를 높여 깊숙하게 던진다. 날카롭게 그의 시야에 잡을 녀석들이 보이었다. 적을 확인한 순간 훅하는 소리와 그의 손에는 창이 없었다. 이미 적에게 꽂혀진 상태이었다.
“이게 무슨…!”
“못 본거다. 넌 지금 아무것도 못 본거야.”
숨기려고 해도 언젠가는 들통 날 것이 틀림없지만 로라스의 눈에는 가히 경이라는 단어가 박혀있는 것 같았다. 순간적인 창의 회전속도로 강력한 힘을 내는 창은 막고 찌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던짐으로 좀 더 강력한 힘을 내는 것이었다. 드렉슬러가 머리를 마구 뒤집었다. 그의 예상 밖인 일이라 그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개발한 거다.”
또, 드렉슬러는 로라스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로라스는 또 다시 그와 벌어진 격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왜죠?”
“왜라니, 당연히 정통을 중요시하는 왕실에서 이딴 걸 인정할 것 같아?”
드렉슬러의 말에 로라스는 수긍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뛰어난 창술이었다. 감히 어떤 누구도 하지 못할 짓이었다.
“애송아, 그 이전에 우리 둘 다 죽을 지도 모른다. 죽을힘을 다해서 싸우자고.”
그제야 로라스는 주변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살기가 주변에서 날카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바닥에 널 부러진 전우의 창을 다시 집어든 드렉슬러가 그들을 향해 창을 막힘없이 던져대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고는 하지만 다수와의 싸움에 당연히 밀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후에 누군가가 전투를 지원해 줄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창을 던지는 것을 숫자를 세면서 던진다. 아마도 곧 한계점이 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창을 던지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되었다.
누가 죽을지 누가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결과이었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약간의 희망을 보았다. 로라스가 생각 외로 잘 싸운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의 체력은 무한대로 보고 전투에 대한 계산을 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었다.
몇 번 던졌다고 후들 거리는 자신의 팔만 아니라면 말이다.
드렉슬러는 그가 한계라는 것을 로라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전의를 상실할 것이 틀림없었고 그는 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된 이상 며칠 동안 전투를 나가지 말지 뭐, 라고 생각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로라스는 마음껏 뒤집고 있었다. 그의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녀석이었다. 또 한 번 생각하지만 역시나 알베르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존재이었다.
저 녀석이 만약 잘못된 생각을 가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적으로 돌리기 싫을 정도로 뛰어난 창술을 구상하고, 저 몸은 아마도 전투에 최적화 된 골격과 근육으로 이루어져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디 이쪽도 신경써주었으면 했다. 아까 전에 한계라는 것을 알리지 않는다는 것을 취소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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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렉슬러의 숨이 가빠졌다. 약간의 현기증 또한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직 실험 작이나 다름없는 것을 마음껏 사용했으니 몸에 무리가 심각하게 오고 있었다. 첫째로 팔이 후들거려서 더 이상 무거운 창을 들 수가 없다는 것이었으며, 둘째로 전시 상황으로 묽은 죽 덩어리로 추정되는 것만 먹어왔다. 셋째로 적이 너무 많다는 사실과 땀이 쏟아져 내릴 만큼 덥다는 것이었다. 일말의 희망이었던 지원군의 소식은 없는 것만 같았다. 귀는 먹먹했다. 귀가 마치 소리를 먹는 벌레에게 먹은 것 같이 소리가 죽어버린 것 같았다. 남아있는 소리는 거친 이들의 목소리뿐이었다. 싸워야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드렉슬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 이상은 무리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날씨는 너무나도 좋았으며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버려 갑옷은 이미 물먹은 솜 마냥 무거워졌다.
“조금이라도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
“말이 쉽지.”
조금이라도 멈췄다가는 둘 다 죽을 확률이 높다, 애송아. 짤막하게 잔소릴 하니 로라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이 상황은 불리한 상황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던 것이었다. 숨이 차서 헉헉대는 꼴이 선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탈진할 것 같이 세상이 핑 돌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로라스가 몇 번이고 기웃거리고 왔다갔다 몇 번이나 그랬다. 그게 더 신경 쓰이는 것임을 모르는 것 같았다. 드렉슬러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상황에서 둘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희박했다. 원망스럽게 박혀 있는 무거운 갑옷을 보았다. 선명하게 찍혀있는 왕실을 상징하는 것이 눈에 먼저 띄었다. 차라리 도망갈까? 도망 가버린다면 모든 것을 다시 그가 바랐던 대로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고개를 저었다. 곧게 서있는 로라스 꼴이 그의 생각을 반대하듯이 너무나도 곧았다. 젠장,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저 녀석 또한 한계라는 것이다. 눈에 띄게 느려진 속도라던가, 그리고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로라스의 호흡은 엉망이었다.
“둘 다 살아남을 확률은 어느 정도가 될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야. 그럼 둘 다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짠다면 그 확률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 진심이십니까?”
“반쯤은.”
로라스는 창을 고쳐 잡았다. 발목을 몇 번 땅에 쳐댔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 번의 힘을 모두 써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드렉슬러의 말이 옳다.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이려면 어중간한 것은 결코 될 일이 아니었다. 그가 뛰어 올랐고, 드렉슬러는 팔이 망가질 만큼 마지막으로 창을 던졌다.
둘이 눈을 뜬 것은 쾌쾌한 냄새가 생각보다 심한 병동이었다. 드렉슬러가 황급히 옆을 쳐다봤다. 다행히도 지원군이 왔던 것이었다. 드렉슬러가 보았던 것은, 그것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드렉슬러가 본 것은 엉망이 된 팔을 볼 뿐이었다. 그나마 의사가 말하기를 당신 몸이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그 정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누가 무식하게 그렇게 창을 던질 것인가에 대해 의사는 몇 분이나 드렉슬러에게 충고를 가장한 잔소리를 할 뿐이었고 로라스의 몸은 생각보다 정상이었다. 괴물 같은 신체 능력에 드렉슬러가 감탄할 때 쯤 드렉슬러와 로라스 앞에 전혀 모르는 이가 서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은 헬리오스 회사의 스카우터라고 했다.
“굳이 올 이유가 없을 텐데…?”
드렉슬러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약간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이미 그들이 속한 조는 '헬리오스' 소속이나 다름없었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스카우터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죠. 드렉슬러의 눈과 로라스의 귀가 착각이 아니라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상부에는 말해두었습니다. 당신들의 능력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헬리오스에서 함께 계속 영광을 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입을 다물고 드렉슬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린 것을 본 로라스는 드렉슬러를 빤히 쳐다보았다. 드렉슬러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가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에 대해 어떤 답을 내어줄지에 대해 드렉슬러는 아무 말도 없었으며 약간 큰 한숨 소리만 귓가에 어릴 뿐이었다. 고려해보겠습니다. 라는 정중한 말투의 드렉슬러의 말에 흡족한 듯 스카우터가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이거 큰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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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큰일인데?”
드렉슬러가 그렇게 말했다. 그랬다. 정말로 큰일이었다. 그들의 능력이 생각 외로 좋은 급수를 받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헬리오스로 출근해달라는 통보를 받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원래 드라군은 헬리오스 소속이기 때문에 이미 헬리오스 소속이나 다름없었지만, 헬리오스 본사로 가는 것은 다른 것을 의의했다. 그들이 '뛰어난 능력자' 임을 증명했다는 사실이었다. 듣기로는 스카우터라는 존재들이 능력자들을 평가하여 회사로 데려온단 소문이 있었는데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헬리오스로 간다는 두 명에게 그들의 단장은 싸늘한 표정이었다. 드렉슬러의 투창술을 스카우터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인 속도로 창을 던지는 것부터 해서 엄청난 원거리에서 던졌다는 사실은 드렉슬러의 재평가가 되었지만 그가 정통의 기술이 아닌 그 스스로 만든 이단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장은 입을 다무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시켰다. 이런들 저런들 해도 그가 이단의 기술을 쓴다는 소문은 곧 퍼질 것이었다. 하지만 드렉슬러가 헬리오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왕실호위대라는 직분은 유지시켜주었다. 그들이 헬리오스의 본사로 입사로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둘로 인하여 얻는 것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단장은 드렉슬러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예측하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드렉슬러가 마차를 타면서 말했다. 헬리오스 본사로 가는 게 발령이랑 뭐랑 틀리나? 라면서 속 편하게 말하던 드렉슬러가 그렇게 말했다. 그가 정말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드렉슬러가 죽을힘을 다해서 힘을 사용하라는 사실에 반신반의하던 그이지만 그 결과가 이랬다. 드렉슬러는 이미 스카우터의 시선을 읽었단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최상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그들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반 쯤 생각한 것이 옳았던 사실이었다. 드렉슬러는 어깨를 으쓱 거렸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넌 그 호칭이 징그럽지도 않냐? 이제 기사단 안도 아니고 회사로 가는 같은 동기나 다름없는데.”
드렉슬러의 꾸중에 로라스는 애써 웃었다. 로라스는 그것이 편하기도 하고 익숙한 것이라고 답했다. 드렉슬러는 그에게 있어서 한 단계 위의 사람이라고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로라스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면서 자꾸 답을 회피하려하자 드렉슬러는 답답해했다. 드렉슬러는 이미 '귀족'이 아니었다. 귀족이라는 것이 싫기 때문에 스스로가 직위를 걷어 찬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거 알고 있을지 모르겠어, 네가 나에게 존대할 이유가 없단 사실을 말이야.”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로라스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드렉슬러 쪽이었다. 멍청한 거 아냐? 아니면 오히려 너무 올곧은 나머지 정신이 미친 것이 아닐까?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도 그는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존칭을 뜻하는 그 단어 하나만 빼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고집불통은 그 것을 허락할 것 같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그 앞에 존칭 단어 정도는 빼라는 소리야.”
드렉슬러가 이건 아닌가 하고 손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을 때쯤 로라스는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혹시 언행이 잘못된 건가라고 생각할 만큼 둔한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참새를 데리고 말을 시키는 게 더 빠르겠다고 드렉슬러가 중얼거렸다. 덜컹거리는 마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드렉슬러의 짐이 떨어졌다. 양피지에 그려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창의 모양과 갑옷의 모양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는 것이었다.
“이런, 그 것 좀 주워줘.”
“이게 무엇이지?”
“그 단어 빼니까 얼마나 듣기 좋냐?”
극존칭이 사라진 채로 말하는 로라스의 말에 그래 그렇게 말하라고 드렉슬러가 만족한 듯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저 취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드렉슬러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자 로라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무리 보아도 드렉슬러의 재능은 여간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것만 안 것뿐인데 지금 까지 로라스를 만들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정해진 모든 것에 의해서 정해진 행동을 하고 정해진 것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같은 결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또 다시 그를 한번 밟아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었다. 그가 밟은 부분이 뜨겁게 데인 것만 같았다. 한 발자국 멀어진 거리를 좁혀나갈 때 쯤 다시 한 발 멀어진 사람이었다.
다리오 드렉슬러라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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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드렉슬러와 로라스는 헬리오스에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이 했던 임무나 헬리오스에서 받는 임무나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며ㅡ 달라진 것은 그들이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렉슬러는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서류를 받았을 때 탈출 할 거라면서 몇 번을 소리친 것을 로라스는 옆에서 그저 웃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회사는 평화로웠다. 그들이 적응하기에도 편했으며 무엇보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드렉슬러에게는 가문의 귀찮은 시선과 모두에게 받던 질타를 감출 수 있었으며, 로라스는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감이 잡힐 것 같았다.
그들은 어느 순간 가장 친한 친우가 되어있었으며,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드렉슬러는 어느 순간 로라스의 앞을 지켰고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앞을 지켰다. 드렉슬러가 무엇을 하기 전에 늘 로라스에게 조언을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라스의 눈은 제법 쓸 만했기에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을 맡기곤 했다.
“하지 마, 부탁이야.”
드렉슬러가 부탁한 것은 그들이 회사에 들어 온지 3년 후의 일이었다. 로라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며 드렉슬러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로라스에게 온 한통의 편지만을 볼 뿐이었다.
- 5 -
로라스의 짐이 차곡하게 침대 위로 쌓였다. 바로 옆방은 이미 사람이 지낸 자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테라스로 나가면 늘 보였던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드렉슬러라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큰 듯싶었다. 망설임 없이 드렉슬러의 방문을 열었다. 캄캄하고 늘 구석에 불이 켜져 있던 공간에 아무런 불빛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울컥했다. 다시 그에게 다가가는 발자국은 사라져있었다. 쫓아 갈 수 없어, 더 이상 그를 쫓아갈 수 없어, 그 사실이 사무치게 로라스를 덮쳐왔다. 부들거리며 떨리던 손은 바닥에 존재했으며 곧게 서있던 다리는 풀려버렸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 것일까? 단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처음처럼 되돌아가는 것이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방문을 닫았다. 마치 시간을 닫는 문처럼, 다시 그는 스무 살의 어린 청년이 되어있었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로라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편지로부터 반항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가 그러지 말라는 그 말에 과감히 편지를 찢어버렸던 기억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더 이상 그런 용기가 없었다.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동안은 모든 수하물을 회사가 점검을 하기 때문에 귀족의 서신 따위는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받지 못 했던 수많은 귀족 영애들의 편지가 날아왔다. 혼기가 찬 수많은 영애들이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다. 능력자 대전이 끝난 지금, '알베르토' 로라스라는 존재는 최고의 신랑감이나 다름없었다.
제발, 숨이 막혀왔다. 잊었던 귀족이라는 굴레가 다시 몸에 틀어박혔다.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잠깐의 일탈을 허용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었다. 헛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오지만은 파르르 떨리는 손은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짓누르는 것이 강하여 서랍을 뒤적거리며 알약을 하나 삼켰다. 그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없는 지금은 마리오네트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굴어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터이다, 로라스는 아픈 머리를 잡고 결국 눈을 감았다. 돌아가고 싶어, 가고 싶지 않아, 왜, 그는 나와 다른 것이지? 그는 왜, 늘, 나와 다른 것이야? 따라가기엔 너무 먼 그 사람이다. 언제나 느끼는 감정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그를 누르고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이 감정은 왜 힘들게 만드는 것인가?
‘보고 싶다.’
아련하게 보이는 뒷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가가서 손을 마주 잡고 싶고 등을 끌어안고 싶지만 그것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이었다. 잡고 싶었다. 함께 하자는 그 말을 듣고만 싶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 '귀족'이라는 족쇄만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웃으면서 그와 함께 할 것이다. 차오르는 김정을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터트리고야 말았다. 살려줘, 드렉슬러. 자네 없이는 버틸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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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다음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
타라가 그렇게 말했다. 타라는 이제는 비어진 책상이 너무나도 허무한 듯이 쳐다보았다. 헬리오스는 유지 될 것이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명성은 더 이상 얻지는 못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타라가 배웅은 이만큼만 할게, 바쁠 예정이거든 이러며 애써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숨기며 그렇게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뵙고 싶소. 조노비치양, 그 말에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다음은 왜 인지 모르게 없을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알베르토의 뒷모습이 흐릿하고도 불투명했다. 곧 사라질 것같이 위태위태한 모습이었다.
“알베르토 경, 몸 조심히”
타라는 그렇게 말했다. 로라스는 그의 최고의 예의를 보이고 사라졌다. 그를 마중 나온 대단한 마차 위에 올라탔다.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는 듯 로라스는 매어두었던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풀었다. 짙은 한숨만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말끔히 넘긴 머리가 흐트러지고 그는 영 정상이 아니었다. 이 길이 너무 길었다. 시끌벅적하던 것이 어제와도 같은데 정적만이 그와 함께 라는 사실을 부정하고만 팠다. 수도로 가는 이 마차의 길이 끝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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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이구나.”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는 그렇게 위협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늙은 몸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다. 가식적으로 웃음을 내비치었다. 그리고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결코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내뱉는 모습에 버럭 소리부터 지를 것만 같더니 한숨을 쉬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게 금 불안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전장에 나가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말에 로라스의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가문을 유지시키는 것 그 외, 그 이상도 아니었다. 전쟁에 다시 나가달라는 말이었다. 로라스는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 몸은 이제 정상인 보다 못하신 걸 아실 텐데요? 물론 당신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창을 들 수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기사의 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능력자 전쟁이 끝난 이후로 몰려온 후유증은 그의 몸을 망가트리기 충분했다. 쉴 틈 없이 떨리는 온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마도 뼈와 근육의 문제가 있는 것만 같았다.
“… 반란군이 나타났다.”
반란군이라는 말에 로라스는 고개를 들었다. 심하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픈 것이 아니다. 이것은 희열이었다. 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그렇게 말했다. 수뇌부의 역할이라면 참여 하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내뱉었다. 기사가 아니었다. 그는, 그 사건 앞에 그의 아버지 또한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기사의 맹세를 하던 날, 그의 '레이디'는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으니까.
- 6 -
드렉슬러가 막은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불안감이 가득했다. 무엇일지 예상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앞에 징그럽게 찍힌 귀족의 직인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위에서 검열해서 주는 편지이기에 그들도 손댈 수 없던 것을 본다면 꽤나 심각한 문제인 듯했다. 드렉슬러가 미안하다. 갑자기 그렇게 말해서, 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했다. 그는 귀족이라면 치를 떠는 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조심히 뜯어읽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기사'가 되어주세요 라는 진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밑에는 그 대신 그의 아버지가 서명한 흔적이 가득했다.
“… 귀찮게 되었군.”
“이제 너를 묶어둘 수단이 '레이디' 밖에 없다는 것이겠지.”
드렉슬러가 해답을 내어주었다. 헬리오스에 붙잡힌 이상 그들이 그와 접근할 수는 없다.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수단을 위해 결국 레이디라는 수를 두었던 것이다. 레이디, 그녀만의 기사는 기사들에게 큰 영광이나 다름없는 행위이었다. 보통은 기사가 그의 레이디를 결정하는 경우이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매우 무례한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거절해, 가문을 보니 익숙한 가문이 아닌 것으로 보아 미끼다.”
“미끼라니?”
“너를 헬리오스에서 꺼낼 미끼.”
헬리오스는 생각 외로 뛰어난 보안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능력자들을 관찰하는 관찰자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을 떼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는 결국은 그것밖에 없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드렉슬러는 초점을 잃어버린 듯한 로라스를 말없이 안아줄 뿐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라며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사시나무같이 떨고 있는 그 모습이 자꾸만 어린 시절 그와 겹쳐 보이고 있었다.
“난 말이야, 네가 도망쳤으면 좋겠어.”
“… 그럴 순 없단 걸 자네도 알지 않는가.”
“하하, 물론 알고 있지. 그리고 도와줄 수 없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드렉슬러가 떨어지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음이 전혀 편하질 않았다. 가지 않는 것이 옳겠지? 로라스가 물었다. 그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드렉슬러가 말했다. 편지에 적혀있던 시간과 장소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은 임무 때문에 가질 못하니 회사 사람을 임의로 보내달라는 로라스의 청을 회사가 들어주었고 회사에서는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을 내어 보내주었다.
“잘했어.”
드렉슬러의 말 하나로 로라스는 모든 긴장감을 풀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모든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 같은 존재이었다. 가자, 오늘도 제법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드렉슬러의 말에 로라스는 창을 고쳐 잡았다.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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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드렉슬러의 말을 듣는 것이 옳았다. 레이디? 웃기는 일이었다. 레이디 같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로 미끼나 다름없었다. 그 장소를 폭발시켜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내었다는 소식에 어이없는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은, 죽일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더 이상 그들이 지닌 패가 아니기에 그들은 그 패를 깨어버리겠단 마음이었다. 결국은 그는 귀족들에게 비치는 가장 좋은 패이었다. 그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머릿속이 짓눌리다 못해 무엇으로 찔러버린 듯이 온몸이 아프다고 반응했다. 제발, 숨을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줘, 그렇게 말해도 그럴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상부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당분 가는 쉬고 싶다고 말한 그의 말을 그들은 수락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그에게 들이닥친 충격은 클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었다.
“얌마!”
문이 시끄럽게 열렸다. 드렉슬러가 두 팔에 온갖 것을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생각 외의 방문이라 놀란 듯이 쳐다보자 뭐 해 안 받고!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렸다.
“이게 무슨 …?”
“술이나 진탕 마시자. 그러려고 내일 휴가도 내고 온 참이다.”
소식을 듣고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이것이었다. 실없는 웃음을 결국 짓고야 말았다. 아. 그가 쉴 곳은 바로 '여기', ' 이곳'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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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알베르토 로라스입니다.”
그의 등장에 놀란 듯이 모두 쳐다보았다. 그들이 아는 알베르토가 어떤 이들이었나, 최상의 능력을 비추어 전쟁을 늘 이기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이었다. 현 알베르토가의 후계자인 로라스를 보자 다들 입이 귀에 걸린 것 같았다. 듣기로 헬리오스에서 뛰어난 능력을 비추었기에 은근한 바람이 있었을 것이었다. 이 전쟁을 끝내는 하나의 '수단'이 생긴 것이었다.
“알베르토 경이 왔으니 이 전쟁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군!”
“그렇소!”
“안타깝지만.”
그가 초를 쳤다. 그의 목소리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저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심하게 부상을 당해서 말입니다.”
라며 거짓을 꾸며내었다. 부상이 아닌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급격하게 죽어가는 몸을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할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그 말을 수긍했다. 얼마 전에 끝난 능력자 전쟁에서 다친 것이 회복이 아직 덜 된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해산합니다. 라는 말로 회의는 짧게 끝냈다. 로라스는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선명하게 마음속에 적힌 그 이름이 반란군이라는 제목 아래에 적혀있었다. 귀족이라는 굴레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는 '혁명군' 이 되어있었다. 괜스레 그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더듬었다. 입으로 굴려서 그의 이름을 말했다.
“다리오, 다리오 드렉슬러.”
나의 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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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회의장에 있는 모든 귀족들이 그렇게 말했다. 현 알베르토 가주는 골머리가 썩힐 뿐이었다. 결국 알베르토라는 녀석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별 수 있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게 말했지만은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송이가 한 말이 주제거리가 되어버렸으니 당분간은 그 이야기로 시끌 벅적할 것이다.
반란군을 막을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저 아이가 내세운 방법은 그저 조심히 방어만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고 말하는 말에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라는 얼토당토도 아닌 말을 내세웠다. 그 아이가 전장에서 배운 것은 고작 그런 것인가 한숨이 나올 수밖에, 그렇지만 변한 것이 있다면 의견을 굽히지 않는 뚜렷한 의지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 전혀 그런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그가 모르는 사이에 ‘그’는 자라있었다.
‘예상외군’
그렇지만 전쟁은 소꿉놀이가 아니었다. 조금은 냉정해져야만했다. 그는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로라스는 예전과 같이 떨던 얼굴로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무감각’한 얼굴이 담겨 있었다. 너무도 변해 있었던 것이다.
“네 의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느냐?”
“아니오, 제 의견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무슨 소리지?”
“제 친우의 이름이 거기에 있는 걸로 봐서 판단한 것입니다. 그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리오? 다리오가 만만치 않다니? 그 멍청한 다리오가(家)가 무슨 꼴인지 너도 알고 있는 것 아니더냐?”
로라스는 입을 다물었다. 다리오 가는 결국 탄압을 받고야 말았다. 중앙 귀족이었던 다리오가 변방으로 밀려난 것은 다리오 가의 가주가 별세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도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없었다. 대신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그 밖에 없었으나 그는 그 곳에 있지 않을 것이었다.
“자식 농사를 잘 못해서 그런 일 아니겠느냐? 귀족의 덕목에는 그 것 또한 포함이 되어있는 것을.”
“도대체 귀족의 덕목이 무엇입니까?”
마음속의 덩어리가 결국 목구멍위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시선을 마주한다. 같은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그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귀족의 덕목 빌어먹을 귀족의 덕목, 로라스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영지 사람들과 내 자식을 잘 보살피고, 왕을 지키며,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겠느냐?”
“본인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을 돕는 것은 귀족의 덕목에 포함이 되질 않는 군요.”
“헛소리.”
“아뇨, 아버님의 말씀이 오히려 헛소리 같습니다. 저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겁니다. 모두 당신이 하게 될 겁니다. 그가 전장에 나서는 순간 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당신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는 전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구는 그 아름다움은 감히 당신이 깨달을 수 없는 존재이었다. 단호하게 말한 로라스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라는 짧은 말을 남기며 문을 닫았다.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그의 길을 갈 뿐이었다. 더 이상 그들의 앞에 숨죽을 이유도 그래야할 이유조차도 없다.
너무나도 그의 목소리가 그리운 순간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순간마다 그를 다독여주던 그를 어떻게 그립다고 하지 않겠는가?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아 괜히 목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답답해지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만 같았다.
*******
거짓말 같지만 종종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만약 우리가 귀족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로라스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 조금 고민했었다. 완벽한 신분 사회가 깨져버린다면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하는가 라는 대답을 내보였다. 드렉슬러가 말했다. 만약에 왕이 없고 신분 사회가 없는 사회가 나타난다면, 자신과 함께하겠냐고, 로라스는 고민하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무엇을 고민할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와 함께하지 못했다. 목줄과도 같은 것이 그의 목에 있기 때문이었다. 드렉슬러는 이미 그 것을 벗어내어 자유롭게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멍하니 그가 내딛는 걸음 자국 자국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반란군의 승리다. 귀족들은 멍청하다. 답을 내놓아주어도 자신들의 위치를 생각하느라 답을 멍청하게 돌려 생각한다. 그가 떠나고자 한 이유를 알 것 만 같았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서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이 상황이 답답하다.
그가 그 자리에서 발버둥 쳐봤자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그저 뻣뻣한 밀랍 인형처럼 온 몸이 굳어진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분명 그라면, 이 상황에서 닥치라면서 판을 엎을 것이 분명하다. 누구보다 현명하게 자신을 끌어주던 그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눈 끝을 지나친다. 이 자리에서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변한 거라고는 찻잔의 차의 향만이 변했을 뿐이었다.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발언권을 주지 않을 뿐더러 시끄러운 회의장이 도무지 조용해지질 않았다. 그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장소에서 그의 의견이 묵살되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알베트로 로라스'는 전쟁을 나선 전사일 뿐 전략을 생각하는 지략가가 아님을 파악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발언권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연치 않게 발언을 하고 나면 오랫동안 전장에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 같소, 그러니 경. 경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라는 조롱 어린 모욕적인 말 또한 로라스에게 퍼붓고 있었다.
아무도 반란군을 막을 이야기를 하고 있질 않았다.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러니 그에게 간파 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뇌가 없나? 생각이 없는 건가? 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곧 가까운 미래가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아마도 이들 절반 이상은 그의 창 아래 죽을 것이다. 이미 수십 번을 당했다고 말하는 저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로라스는 침묵했다. 멍청한 놈들. 그는 시끄러운 회의장을 나와 버렸다.
“굳이 그가 참모로 있어야할까요?”
그가 나간 회의장은 차갑고 차가웠다. 로라스가 설 공간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나가자마자 조용히 발언한 이에 의해 주제거리가 반란군이 아닌 로라스가 되어있었다. 그가 왜 전장에 나서지 않을까라는 사담들이 오가고 말았다.
“듣기로는 능력자 전쟁으로 인해서 신체에 무리가 갔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닙니까?”
“사실일세.”
그가 수긍하자 모두 만족한 얼굴이었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그들에게 필요 없는 패임을 눈치 챈 것이었다. 본디 알베르토 로라스에게 남아있던 것은, 능력자 전쟁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 활약을 또 다시 보여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가 참모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사’ 로서 이미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누가 생각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팔이 없는 기사를 어느 누가 말 위에 앉혀서 선봉에 세우겠는가?
그들에게 비소가 입에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언젠간 분명 쓸모가 있겠지. 분명히.”
그가 그렇게 말했다. 하찮은 것, 알베르토의 이름을 가졌으면 그 만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법이다. 이름의 무게를 알아야하는 것이었으나 그 아니는 전혀 이름에 대한 무게를 모르고 있었다. 한심한 것, 그의 입에서 잇소리가 난 듯 했다.
*******
“이대로 가면 순조롭겠군.”
그들을 보며 그가 말했다. 다리오, 다리오 드렉슬러가 이들 반란군의 수장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가 받았을 뿐이었다. 능력자 전쟁이 끝나기 전에 접선해온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이들이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가 바라는 세상에 한 발자국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의 손을 잡은 것은 옳은 행위이었다. 신분 사회라는 더러운 굴레를 끝낼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기에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전술을 파악하는 전략가가 되어있었다. 능력자 전쟁에서 사용했던 전술은 생각 의외로 멍청한 녀석들에게 먹혀들었고, 이대로 조금만 더 진입한다면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뭐 알아낸 것이 있냐?”
“언제나 똑같죠, 그나저나 좀 씻으세요. 매우 더럽습니다.”
옆에서 같이 일하는 이가 말했다. 드렉슬러는 그렇게 냄새가 나냐? 라며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긁어댔다. 며칠 동안 전술을 생각해 내느라 씻지 못한 탓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하의 짜증에 드렉슬러는 욕실로 향했다.
따뜻하게 데워져있는 물에 몸을 담갔다. 모든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그를 괴롭히는 일은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 관련 가문에 알베르토라는 것을 읽자마자 숨이 먹먹했다. 알베르토가 전쟁에 끼는 것은 당연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공신이었다. 다만 걸리던 것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애송이의 표정이었다. 아련하게 바라보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애송이가 전쟁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애송이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이미 두 눈으로 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을 어찌 잊으랴? 초점이 없던 두 눈동자의 시선과 부러져버린 그의 긍지를 어찌 잊어버리겠는가?
‘나는 더 이상 자네의 창을 잡지 못하는 것인가?’
그의 공허한 눈동자가 그를 향해서 물었다.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아, 그렇군. 더 이상 자네의 창을 잡지 못하는 군.’
그는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육신이 그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의 능력이 그의 육신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드렉슬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로라스의 신체 이상 징후는 꽤나 여러 번 있었다. 코피를 흘린다거나 자주 쓰러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그의 잘못이었다.
‘미안하다.’
굳게 다문 입술 끝에서 드렉슬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미움, 그리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사실이 분노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군, 그저 내 잘못일세.’
한심한 놈, 그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병실에서 결국 드렉슬러의 눈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굵은 눈물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다른 파트너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라는 말에 떨어진 눈물에 당황한 그와 그는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드렉슬러는 어느새 차가워진 물에 온도에 정신을 차리고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쩌면 바랄지도 모를 것이다. 그를 다시 보기를 바랄 지도 모를 것이다.
-7-
나는, 네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그 유혹적인 말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는 이미 떠났고, 홀로 남아있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왜, 지금도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네가 한 번만 나에게 더 힘을 주었더라면 나는 너와 함께 했을지도 몰라.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변한 것은 없었을 거야,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같아.
축축한 머리카락에 조금은 정신이 차리는 것 같았다. 잠이 깰 법하지만 쉽게 잠이 깨지 않았다. 이 몽롱한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생각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 십 번 선택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야 만다. 만약 그 편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왜 그러냐고 물어봐주었더라면, 그에게 상의를 할 시간을 주었더라면, 이름의 무게를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천천히 세상이 변했던 것이다. 소수의 계층들이 함께 그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처음 그를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먼 거리에 서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그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 의 것이었다.
물기가 있는 머리카락을 천천히 말리고 귀족의 정복을 갖춰 입는다. 머리에 기름을 발라 말끔히 넘긴다. 누구라도 그를 넘볼 수 없어야만 했다. 마치 전쟁이라도 나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아, 전쟁이 맞았다. 차라리 피가 튀기는 전장이 나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제가 선봉으로 나서겠습니다. 불만 없으십니까?”
결국 답답한 마음에 그가 말했다. 이도 저도 아닌 전술로 그들을 막겠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전략을 읽는 다는 것은 그 외에는 가능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가 선 듯 나서서 선봉에 서겠다는 말을 하자 주위는 조용해졌다. 그들이 생각한 계산에 어긋났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이미 그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봉에 서겠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그 것은 무리가 아니겠느냐?”
“제가 판단합니다. 당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닙니다.”
한심한 사람, 이빨이 빠진 사자는 더 이상 그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되질 못했다. 로라스가 그럼 군대를 내어주십시오 승리를 내어드리죠 라는 당당한 태도를 취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 되었다.
“별 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 같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다음 전시 때는 제가 선봉에 섭니다. 그리고 어떻게 제가 행하던 토를 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끄럽습니다.”
로라스가 자리를 나서자 혼란스러웠다. 그를 저리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겁니까? 그들이 말했다.
“우선 한번 지켜봅시다. 그리고 그 후에 처리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가 활용도가 있음을 그들이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가 선봉에 서자마자 승리를 거두었단 소식이 들렸다. 거짓말처럼 그들은 그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귀족이 오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은 모두 똑같다. 간사해지는 것이 되었다. 반란군에게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크게 알렸다. 반란군의 귀에 들어 갈 정도로 크게 알렸다.
이제 그들은 그들이 아닌 그를 노릴 것이다.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그들이 아니라 ‘알베르토 로라스’ 이기 때문이었다.
*******
어두운 밤의 시간이 천천히 다가오며 그를 비추었다. 로라스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적은 총 다섯 명 이었다. 꽤나 능숙한 암살자인지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 있었다. 바스락 거리는 종이의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무엇인가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가 눈을 뜰 이유는 없었다.
뻔했다. 그 멍청한 녀석들은 그를 살려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에게 분명 보호막이 되어주고 싶어 전쟁에서 이겨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렇게 미적하게 대처한 이유는 어떻게 되건 그들은 그들의 자리만 유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억지로 웃음이 띄어질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다가오려는 이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하는 소리가 들리었고 뒤에서 오는 기척을 느끼어 목을 움켜쥔 자로 뒤를 막았다. 꽤나 예리한 것이 아무래도 오늘 밤을 쉽게 날 것 같지 않았다.
“누가 보내었지?”
물어보아도 답이 없다는 것은 예상한 일이었다. 거리를 좁혀오며 그에게 다가오자 로라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시간의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째깍거리는 시계의 소리와 같이 로라스는 바닥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희미하게 퍼지는 향, 언제나 같은 향초의 향이기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온몸이 마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복부에 가하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시계가 천천히 움직이었다.
*******
알베르토 로라스가 이후 회의장에 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점차 그들의 자리가 비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 자리들은 천천히 사라지더니 어느 샌가 남아있는 자리는 눈을 감을 뿐이었다. 회의장에 한 사람이 들어섰다. 비릿한 웃음을 가지며 들어온 남자는 어디선가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멍청한 놈들, 우리가 노린 것은 너희였단 것을 전혀 몰랐냐?”
썩어빠진 세상을 만드는 것은 왕이 아닌 그 밑에 있는 것들이었다. 서로 그들의 자리를 탐하며 서로의 자리에 전혀 만족을 하지 못하는 애석하고 멍청한 존재들의 발악이었다. 드렉슬러가 만족한 얼굴이었다.
“저 것들을 어떻게 해치우는 것이 좋을까?”
“멈춰라! 다리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다리오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네가 바로 다리오가 아니더냐! 다리오 드렉슬러!”
시선들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저 시끄러운 영감이 결국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 다리오가 어째서?
“미안하지만, 이미 가문에서 퇴출당한 사람이라 다리오라는 성은 의미가 없지.”
저것들 치워버려, 드렉슬러의 말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잡아들인 귀족은 수도의 귀족들로 반란군와 싸운 왕들의 기사들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보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없었다. 로라스는 이 자리에 없었던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어디 한번 귀족들의 피는 얼마나 비싼지 볼까?”
익살스럽고도 잔인한 그의 목소리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고 시간이 멈추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들의 왕은 이미 도망갔다는 소식이 가득했으며, 한 몫 챙기려고 했던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축제, 그렇다. 가히 축제라고 해도 될 법한 상황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며 잔인해지고 있었다. 그들을 괴롭히던 것들의 죽음이었다. 하나 둘씩 사라지는 목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더 크게 만들었다.
“다음은, 감히 우리를 이기려고 들던 한 기사 놈이다. 선봉에서 아주 크게 날뛰었다고 하는데 어디 복면이나 벗겨봐라!”
드렉슬러는 그 발언을 후회했다. 그가 바란 얼굴이 그와 얼굴을 맞대고 서 있었다. 그와 그 사이에 이뤄진 것이었다. 입술이 달싹거리고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아 보인 것 같았다. 드렉슬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녀석 어디서 데려왔어! 라고 소리를 질렀다. 잘생긴 얼굴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감히 독단적으로 임무를 진행하지?”
드렉슬러가 낮게 으르렁 거렸다. 그의 분노가 제법 컸는지 눈치만 보며 서로 아니라고 발 뼘을 친다. 드렉슬러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임무를 내린 것은 당신입니다! 우리는 임무대로 기사 놈을 잡은 것뿐입니다.”
안심해버린 것이 그의 큰 실수이었다. 결코 로라스가 전장에 나올 일은 없다고 안심해버린 것이 큰 실수이었다. 유일하게 진 전투이었다. 어떤 똑똑한 녀석이 그런 일을 한 건지 그를 처리하라고 단순하게 넘겨버린 것이 실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알베르토는 전쟁에 나올 일 없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 실수가 되어버렸다.
드렉슬러는 초초한 마음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이미 표정은 저 사람을 빨리 죽여! 라는 얼굴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를 감싸거나 그를 옹호한다면,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저들의 등을 돌리게 되어버린 것이기에 드렉슬러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그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다음 처형일로 미루는 것으로 한다. 이 녀석은 다시 감옥 안으로 보내!”
“하지만, 그는!”
“조용히 해!”
독단적으로 일을 취하는 그를 처음 보는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렉슬러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머리가 복잡해 죽을 것만 같았다.
드렉슬러는 그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거두었다. 더 바라본다면 큰일 날 것이 분명했다. 입술을 깨물고 진지한 얼굴로 그를 깊게 바라보자 그 바보는 잘 움직여지질 않는 입술로 그에게 말했다.
‘입술, 깨물지 마.’
8 -
골치가 아팠다. 그를 살리자니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신뢰를 져버리는 것과 같았다. 드렉슬러는 와인 잔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녀석의 팔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의 완벽한 실수이었다. 창을 쥐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할 녀석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멍청하게 선봉에서서 그렇게 할 줄은 누가 알았던가? 골치가 아파져왔다. 테이블 옆에 놓는다고 놓았던 와인 잔이 미끄러졌던 것 같았다. 새하얀 비싼 러그에 와인이 진하게 퍼져갔다.
“세상에나! 그 러그 얼마나 비싼 건지 알고 그러십니까?”
“시끄러워, 생각중이야.”
입을 다물다가 그는 빤히 드렉슬러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를 흔들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그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알베르토 로라스 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사람은 ‘알베르토 로라스’ 이었던 것이었다. 언제나 저 냉철한 사람에게 틈이 있기를 바란 점이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자신 혹은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완전히, 저 사람에게는 알베르토 로라스라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도 소중하신가봅니다.”
“너라면 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같이한 사람을 네 손으로 죽일 수 있겠냐?”
“예, 전 제 부모도 죽였는걸요.”
“그게 아니라…, 젠장 맞을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너랑 해야 하냐? 시발!”
골치가 아픈 듯 그가 욕설을 내뱉었다. 드렉슬러가 욕설을 내뱉는 것은 다반사이지만 그렇게 이성을 잃은 듯 말하는 것은 드물었다. 물론 알콜의 힘으로 그가 그러는 것일 지도 모른다. 침착해야만 했다. 그가 흔들린다고 그 자신 또한 흔들려서는 결코 안 되었던 일이다. 자신들은 대사를 끝낸 이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가 서있어야 한다. 그들의 절대적은 군주는 ‘그’ 이기 때문이었다.
“냉정해지세요.”
그는 그렇게 말을 뱉었다. 드렉슬러의 눈은 무엇을 생각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임무는 그를 보좌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문을 닫고 나왔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그를 따르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시발!”
그의 욕이 바닥을 젖게 만들었다. 바닥은 이미 지독하게 단 향기가 배어있었다. 냉정해지라고? 예전부터 이미 냉정하다 못해 냉정의 이미지이었던 건 잘못 본 것인가? 부하에게까지 그런 조언을 받을 정도라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알베르토 로라스라는 존재가 이리도 크게 남아있을 줄 누가 알았던 가, 이 미묘한 감정은 모래시계가 떨어지듯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감정을 주워 담아서 다시 퍼즐을 맞추고 맞추어보아도, 퍼즐은 깨지고 말았다. 이 더러운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다리오 드렉슬러 라는 사내가 이리도 한심한 사내이었던가? 하, 우습기도하지.
침대에 몸을 누워 그는 생각했다. 그의 인생에서 알베르토 로라스가 없는 것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그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았어도, 그래도 그는 자신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그를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해도 믿고 지지해줄 것이라는 생각, 그 한심한 생각이 그를 괴롭힌다. 어떤 판단을 해야 옳은 것이야?
‘나는, 도대체, 널 어떻게 해야 해?’
속으로 또 묻고 물어도 마음속에서는 답을 내어줄 수 없었다. 빌어먹을,
결국 결심한 짓이 있다면, 몰래 그를 만나는 일이었다. 잠들어버린 모든 이들을 깨우지 않으며 천천히 그를 만나러갔다. 몸을 웅크린 채로 몸을 숙이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았다. 예민한 그의 감은 적절했는지 그는 그를 보며 웃었다.
“멍청한 녀석, 웃을 상황이냐?”
“뭐, 어쨌든 간에 자네가 날 만나러 와주지 않았나?”
“지랄, 미안하다.”
“뭐가 말인가?”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못할 것만 같았다. 어떤 말을 해도 그는 그저 웃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은 이 답답한 마음은 어떻게 누를 수 없는 것이다.
“너와 함께하지 못해서.”
“그게, 왜 자네가 사과해야할 일인지 나는 모르겠네, 모두 내가 어리석었던 것 아니던가? 나는 용기가 없었어, 자네를 따라갈 용기, 그리고 ‘알베르토’라는 이름을 버릴 용기조차도 없었단 말일세, 그러니 드렉슬러 그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어.”
개새끼, 입에서 욕이 나올 것을 참았다. 알고 있었다. 그에게 알베르토 가에서 편지가 왔다는 것을, 그가 왜 자신과 함께 하지 못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자신은, 알베르토와 로라스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알베르토는 모르지만 로라스라면, 나와 함께해줄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그렇게 괴롭혔는지 모른다.
“내가, 늘 말하지만 넌 참 재수 없어.”
“어떤 의미로 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애정이 담겨있는 말 같군.”
“미친 새끼, 조금만 참아라, 네 덕분에 간만에 머리가 좀 돌아갈 것 같거든,”
“나는.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하던 괜찮아.”
“뭐?”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차릴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그 표정은, 그날, 감히 그와 그의 이름의 무게를 저울질 하던 순간의 얼굴이었다. 왜, 네가 그런 얼굴로 모든 것을 포기해?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이어줄 수 없었다. 묵묵한 침묵이 지나가고 뒤를 돌았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어느 샌가 천천히 이기적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가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저 사람 없이도 살 수 있어?
그 대답에 나는 머뭇거렸다.
*******
머리를 굴렸다. 그날, 알베르토 로라스의 복면을 벗긴 순간, 아무도 그가 알베르토 로라스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구타를 당한 흔적으로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녀석을 위로 내어보내도 그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존나, 머리 잘 돌아가는 놈! 넌 역시 천재야! 자화자찬하며 그가 택한 것은 돈이 필요하다면서 들어온 이를 붙잡았다.
“야, 너 돈 필요하다 했지?”
“그렇습니다만”
“애새끼들 모르게, 내 부탁하나만 들어줘라.”
오히려, 공과 사를 구별 못하고 그 새끼를 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병신 같았지만, 인생에서 알베르토 로라스가 없는 삶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혐오하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다. 일부분이나 다름없는 놈을 어떻게 잘라낼 수 있어? 그게 가능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어나.”
로라스를 낮게 불렀다. 자다 깬 건지 몽롱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로라스의 모습에 의외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늘 언제나 단정하고 완벽한 얼굴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흐트러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가는 건가?”
“아니, 넌 살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
“너 대신 다른 녀석이 단두대에 설 거다.”
“자네 미쳤는가?”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자네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어? 라고 되물어보는 듯 그 시선에 죄인이 된 것 마냥 고개를 숙였다. 끝까지 정의로운 녀석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아무런 대답을 내어줄 수 없다. 결국에 어쩔 수 없는 건 그 자신이나 다름없었다. 온갖 허세를 다 부리더니 결국 그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지극히 정상적이야, 그러니까 빨리 나와 애새끼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누가! 자네더러 살려달라고 했어?”
“시발! 닥치고 나오라고! 얼마나 내가 더 포기해야 따라올 건데? 도대체 너한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거야? 너 때문에 내가 엉망진창이야 알긴 알아?”
“자네…!”
냉철하다고? 그런 건 이미 과거의 일이다. 지나치게 감정에 충실했다. 그 대답에 답이 나와 버렸다. 한심하게도 알베르토 로라스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알겠네, 그러니 그렇게 애쓸 필요 없네.”
로라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 없이 그는 드렉슬러의 뒤를 쫒았다. 한 걸음, 두 걸음,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쯤, 드렉슬러의 등을 보았다. 저 등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와 그에 비례하는 부담이 있을까? 문득 그가 말한 포기한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 주위가 잠잠해지면 널 내 사람으로 쓸 거야.”
“알겠네.”
그의 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사용하겠다는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드렉슬러가 나간 후 적막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적막 속에 그는 천천히 빠져들었다.
드렉슬러가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 지,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서 들었던 생각은, 과연 그가 그렇게 할 만큼 그가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인가? 이었다. 그는 숭고한 다른 이를 희생하여 살만큼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서 무고한 생명이 하나 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숨을 죽이고 몸을 감싼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뜨거운 그 피가 그를 점차 침식해간다. 그는, 결코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그나마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드렉슬러의 말 뿐이었다. 웅크리고 웅크린다. 그는 멈춰버린 나약한 사람이었다.
*******
“기분 좋아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면 좋은 거겠지.”
드렉슬러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처형당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저 녀석이 바라는 대로 해줄 것이다. 그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그’가 되었다.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역시 눈치 챌 줄 알았다.”
드렉슬러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귀족 출신도 아니며, 하물며 평민 출신도 아닌 흔한 길거리에 있는 거지새끼가 뛰어난 머리를 가진 뒷 세계의 머리일 줄은 누가 알았던가?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단순하십니다.”
“뭐가.”
“제가 당신을 예측한 것처럼, 애새끼들도 예측했다는 걸 아셨어야죠.”
“우스운 소릴 하고 있는데? 이 다리오 드렉슬러가 고른 사람이다. 우습게 평가하면 곤란해.”
“예, 안 그래도 전멸했다고 답이 왔습니다. 무시할 사람이 아니더군요.”
“육체는 결코 머리를 배반하지 않지.”
그의 팔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더 이상 기사로 서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가 무너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아마도 한계일 것이다. 더 이상 그의 육체는 기사로서는 서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의 옆에 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알베르토 로라스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는 만족하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처럼 비위를 거스르지도 않았고, 귀찮게 하지 않는 그는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몸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고 그저 그가 필요할 뿐이었다.
“헛된 소릴 그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애들이 그렇게 착한 놈들이 아니잖아요?”
“넌 왜 그걸 이제 말해 주냐?”
“따로 묻지 않으셔서 입니다만? 그리고 그렇게 구시는 게 괘씸해서요.”
“왜?”
“당신이 그에게 신경을 쏟고 있잖아요. 우리보다도 더.”
내가? 그에게 그렇게 신경을 쏟고 있어? 그에게 물었다. 정말 모르시겠어요? 라며 정말 어쩔 수 없는 분이시네요 라며 문을 신경질 적으로 닫고 나갔다. 그래, 부정할 수 없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알베르토에게 신경을 끄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부정조차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무엇인가 모를 불안감에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부디 그들이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었다.
*******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로라스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주위에 몰려온 이들을 밟고 올라서 있었다. 어떻게 감히, 나를 이리 대하는 것인가? 그에게 묻자 그들은 당신이 드렉슬러를 망치고 있단 대답에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다리오 드렉슬러는 더 높은 곳에서 별과 같이 빛날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한명을 기절 시킨 후에야 로라스는 마시던 차를 마저 마실 수 있었다.
은은히 퍼지는 차의 향은 그의 불안한 마음을 절대 진정시킬 수 없었다. 더 이상 창을 쥐지 못한다는 의사의 판단, 그리고 무수히 떨리던 손을 잊을 수 없었다. 창을 잡지 말라니, 더 이상 기사의 맹세를 읊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천천히 갉아 먹었다. 드렉슬러에게 독이 될 바에는 이 필요 없는 몸은 버려도 될 것만 같은 생각이 그를 아프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 뭔 줄 아냐?’
‘무엇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짓이다. 그것만큼은 너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하, 걱정 말게나, 나는 명예롭게 전장에서 죽을 것이니.’
흩날려가는 기억의 파편은 그가 시도를 하려는 그 순간에 천천히 맞추어 진다. 바닥에는 뚝뚝, 물소리가 퍼져간다. 깨트려져 버린 찻잔의 파편을 손에 쥐었다. 단단한 손이 무색하게도 붉게 피가 맺혔다.
그에게 미안하지만은, 이것이 모두 끝이란 생각이 들고 보니 더 이상 두렵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천천히 유리의 파편은 손목에 닿고 무감각하게 베어낸다. 수 십 번 수 백 번 적을 베어내는 것보다 이 고통이 더욱 절절히 그에게 와 닿는다.
아…, 결국은 그에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언제나, 나는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던 어린 그 소년과 키가 자란 청년, 그리고 이제의 나는 결코, 그와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제나, 몇 걸음, 몇 발자국 앞에서 망설이고 망설인 그 순간이 결국은 이리도 한심한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아…, 그는 멀리 있구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정신 차려 로라스!”
몇 번이고 뺨에 닿는 소리에 흐릿한 정신이 겨우겨우 깨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피가 빠져나간 것인지 힘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멍청한 자식아! 어떻게 네가 가장 죄악인 행동을 하고 있어.”
절절하게 말을 읊는 드렉슬러의 눈에서 결코 흘릴 리 없는 눈물방울이 떨어져 뺨에 닿았다. 아, 뜨겁다. 흘리던 피가 도무지 지혈이 되질 않아서 드렉슬러는 자꾸만 입에서 욕을 내뱉었다. 개새끼, 어떻게 네가, 왜? 자꾸만 숨을 멈추면서 그가 그렇게 말했다.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짙어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던 드렉슬러의 한 마디에 눈을 감았다.
“너는, 내 전부란 말이다. 이 멍청아.”
그의 한 마디로 그와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결코 닿지 못했던 거리가 좁혀지고 가까워진다. 이 고작 몇 걸음을 가까워지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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