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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즈

드렉로라 조각글

한여리 2015. 6. 3. 00:21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U5wuK

자네를 연모해.

불투명하게 비추는 글라스에 불빛이 아른거렸다. 취했나. 취했군. 이렇게 술을 과하게 마신 적이 없었을 텐데.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머리가 지끈 거린다.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그는 이미 바의 긴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쓰러져 있었다, 눈이 풀리지만은, 그것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취해있어. 그래. 조금은 괜찮아. 손가락을 뻗어서 짙은 눈썹과 그리고 높은 콧대를 지나쳐서 입술 근처에 손가락을 댔다. 말캉한 입술이 제 손에 닿고, 전율이 오는 것 마냥 짜릿한 기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쳐댔다.

이런, 취했어. 손가락에 닿은 열이 너무 뜨거워서 황급하게 떼어내었다. 열을 식히는 사람인 것 마냥 저 또한 고개를 테이블에 박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 자네에게 빠졌을까. 짙은 알콜의 냄새가 제 코를 지난다. , 나는 자네를 좋아하게 된 걸까. 눈을 깜빡이면서 그의 얼굴을 하나, 하나 눈에 담기 시작했다. , 도대체 어째서. 혐오스러울 만큼 자네가 좋아. 사진을 찍는 것 마냥 눈을 깜빡 깜빡이었다. 하나, 담았던 욕심이 점차 커져, , 욕심이 조금씩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괜히, 손을 뻗어서 거친 머리카락을 매만져 본다. 그냥, 취해서 그런 것뿐이야. 그저. 그렇게 한참을 깜빡이다 느릿하게 눈을 뜬 그 눈빛과 마주했다. 모든 사고가 정지한 것 마냥, 뻣뻣하게 손을 거두었다.

뭐하냐.”

모르겠네.”

취했냐.”

나른하게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게 서로 마시는 게 아니었다. 중얼 중얼 거리면서 몸을 겨누지도 못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어깨를 잡으면서 가자. 하고 이끌었다. 그럼 그래야지. 하고 중얼거렸다. 비틀거리면서 옆에 둔 겉옷을 들었다. 서로 비틀 거리면서 어깨를 잡아댔다. 비틀거리는 거리가 울렁이게 제 눈을 흐려댔다. 영 좋지 않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저어댔다. 고개를 돌려서 그를 보니 그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다. 풀린 눈이 제법 가까워졌을 다고 싶었을 때 쯤, 벽에 기대어서 술 냄새 가득한 입술을 서로 맞대고 있었다. 알콜, 알콜의 힘이겠지.

누가 먼저 입술을 맞대었는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신은 제 편이었다는 것이었다. 기억하지 못할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죄책감,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그저 입술을 맞대고 혀를 섞어대고 있었다. 미쳤을 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

 

등에 손바닥을 가져다대었다. 손바닥이 닿고 떨어졌다. 그 온기에 몸을 뒤척이면서 일어나려하는 기분이 들었다. 화들짝 화끈거리는 온 몸을 집어 들고 자리를 피했다. 기억나는 일이 아니 이길, 서로에게 결코 기억나는 일이 아니기를 친구, 그 이상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무리였다.

어디 가냐. 알베르토.”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지. 자네와 나의 거리를 벌리는 중일세.”

네 녀석은 가끔 어려운 말을 하고 있어. 뭘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섹스 프렌드 쯤, 그 쯤이 아닌가 싶은데.”

섹스 프렌드. 쳐다볼 힘조차도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지났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바스락 거리는 제 옷만을 쥐고 서있었을 뿐이었다.

자네를 연모해.’

그것도 절실히. 침대 위에서 턱을 괴며 보는 얼굴은, 그 얼굴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는 몰라. 결코. 그저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안겼던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랬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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