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5 수정 뒤늦은 절망감은 온 몸을 감싸다 못해 패배감마저 느끼게 만들고야 만다. 손을 꽉 쥐었다가 다시 풀었다. 돌았던 붉은 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돌아온다. 깊은 한숨을 쉬고, 다시 숨을 내쉬었다. 문 뒤로 들리는 서로의 환희에 찬 숨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귀를 막았지만, 들리는 타인과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이와이즈미.” 그의 이름을 부르다가 애꿎은 벽만 내려쳤다. 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에게 느끼는 패배감은 한 번이면 족했으나, 애석하게도, 오이카와에게 느끼는 패배감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아마도, 제가 숨쉬고 있는 동안은 영원히 그러겠지. 쾅, 쾅. 쾅. 내려치던 벽의 소리가, 서로의 감정을 인식한 연인들에게는 그저, 작은 소음..
나는 누구인가. 안개 속 같은 정신의 시간을 걸어 본다. 걸어보아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끝없이, 계속 걷자. 걷다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지독하게 컴컴한 세상은 빛이라고는 내어주지 않았다. 안 돼. 아버지. 창조주, 아비라고 할 수 있는 그 사람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육신을 바꾸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정신마저도 바꿔버린다. 사람이 무엇이던가. 아, 그저 하나의 장난감인가? 착각의 늪에 빠져버린다. 안개는 점차 짙어지고 점차, 길은 보이질 않는다. ‘그녀에게 보내시오.’ 알 수 없는 그녀. 그녀에게 보내겠다고 수락한 아버지는 온 몸에 박혀있는 기계의 그것을 뽑아내었다.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육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전기가 통했다 사라지는 ‘제품’ 마냥 늘어트려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