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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즈

쌍창 - 전력 60분

한여리 2015. 2. 21. 23:55

*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었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바라보는 저 오묘한 갈색의 눈동자는 다리오 드렉슬러 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리오 드렉슬러라는 것을 확연히 아는 그 눈동자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렇게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겠다고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로라스는 내려다본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미, 심장이 멈춰버렸다.

그의 유일한 신과도 같은 존재는 그렇게 그의 앞에서 추락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몸을 껴안았다. 찰그락 거리는 쇠붙이의 소리는 그와 그 사이를 방해라도 하는 듯이 그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멈췄다고 죽을 리가 없잖아, 다리오 제발 숨을 쉬어. 뻣뻣하게 굳어가는 그의 몸을 몇 번이고 주무르고 얼굴을 때리면서 그것을 부정했다. 그는 죽지 않았다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의 시체를 회수하려는 회사 이들의 저지에, 그 저지 외에 그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드렉슬러의 몸이 그렇게 뻣뻣할 리가 없잖아? 그가 왜 흰 천에 가려져 있어야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물었다.

정신 차려요, 알베르토 경, 경이 직접 눈을 감겨주었잖아요.”

맞다. 그랬지. 그가 스스로 그의 눈을 감겨 주지 않았던가, 초점 없이 바라보던 행복했던 그 따뜻한 눈동자를 제가 감겨주었었지. 그랬었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눈 근처가 뜨겁게 몰려온다. 단 한순간도 냉정함을 잃은 적이 없었던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곁에 남은 이들 또한 알고 있었다. 제 신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몰려오는 슬픔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그저 그의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땅 위에서 눈물과 울음을 쏟아내는 것이 전부이었다. 아무도, 그 아무도 그 기사의 울음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그는, 전부나 다름없었으니까.

그의 손은 언제나 투박함을 유지했다. 그의 손가락을 잡는 순간 모든 노력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손은, 언제나 특별했다. 그러지 않고 서야 그 마음을 모두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투구를 바닥에 떨구고 도저히 진정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게 쉽게 진정이 될 일이야, 어떻게, 겨우 겨우 그를 끌고 들어온 이들이 로라스를 저지 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게 바라보는 일이 전부 이었다. 그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그의 창도, 그리고 그의 투구도, 로라스는 그것들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몸을 둥글게 말아, 온 슬픔들을 쏟아 내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가 죽을 수가 있어, 어떻게.

그를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리오 드렉슬러가 없는 알베르토 로라스는 멍청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알베르토 로라스도 제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알베르토 로라스의 생각, 말투, 그리고 모든 기억들은 다리오 드렉슬러에 의해 변했기 때문이었다. 로라스는 아무 것도 떠오르고 싶지 않았다. 가장 큰 것들을 잃은 기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던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그의 정신은 천천히 공허함에 침식당해 버린다. 처음 날을 세우고 그를 쳐다보았던 그 날카로운 눈빛과, 그리고 저를 보며 웃어주던 그 입술, 함께 도망치자며 이끌고 갔던 넓은 등과, 모든 것들을 창조하려고 했었던 기억과 손의 기억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머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기억들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존재들이었다. 그는 그렇게 아무 것도 떠오르고 싶지 않아 스스로 눈을 감았다. 다시 뜨지 않을 세계들이었다.

 

 

 

**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건가요?’

그의 기억속의 유일한 그녀가 로라스를 내려 보았다. 그녀의 눈빛 속에서 로라스는 그녀와 눈을 마주할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나타난 것이오. 당신은 참 날 지독하게도 괴롭혀. 난 당신을 괴롭힌 적이 없었어요. 지독하게 무관심한 당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죽은 멍청한 약혼녀일 뿐이지. 알고 있으면 입을 다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가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주의를 몇 번 돌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군요.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눈을 들어 그녀를 마주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잘난 당신의 머리로 생각해보아요. 그녀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의 기억속에서의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드디어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느껴오는 수 없이 많은 근육의 아픔에 똑바로 일어서질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가 멀쩡하게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보니 수액이 똑똑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눈을 뜨는 것조차도 뻣뻣하게 느껴질 정도이었다. 이내 달칵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로라스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노비치 양이었다. 로라스는 익숙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으나 턱하고 막혀버린 입 때문에 어떠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영리한 그녀는 종이와 펜을 넘겨주었다.

언젠가 말했었지만, , 미련해.”

그녀의 말에 로라스는 어색하게 펜을 놀려 사과의 뜻을 적어 내렸다. 타라는 별 다른 것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어떠한 것들을 그에게 내밀 뿐이었다.

회사에서도 지금 난리가 났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다리오 드렉슬러가, 가짜였다는 소식이 돌고 있어. 이게 뭐라고 생각해?”

그 다리고 드렉슬러가? 로라스는 놀란 듯이 숨을 들어 마시다가 컥컥 거리는 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그가 가짜일 수가 있지? 그 따뜻한 체온, 그리고 저를 바라보던 눈동자는 똑같지 않았던가? 흔들리는 손과 눈빛으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어떻게 된 것인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떨리는 손 때문에 그 글씨가 제대로 읽혀질지는 알 수 없었다. 타라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내민 서류를 보라는 듯이 손짓을 할 뿐이었다. 그녀가 할 일은 전부 다했다는 듯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우습기도 하지. 어떤 한 이는 진실로 그를 믿었을 텐데. 어떤 이는 그를 진실로 믿질 않았으니. 잔인한 세상은 어쩔 수 없는 도리였다.

로라스는 떨리는 손을 겨우 잡고 그 서류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다리오 드렉슬러가 죽었다고 말하기에는 그 것들은 다른 것을 제시하고 있었다. 인류를 끝을 낼 수 있는 폭탄의 개발자의 이름이었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인물의 철자를 다시 돌리면 나오는 이름에 그는 절망했다. 다음 장을 넘기어 보니 드렉슬러와 꼭 닮은 이가 어떤 이와 대화를 하는 사진이 찍혀있었다.

다리오, 드렉슬러. 그 이름이 그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호흡들이 가빠지며 그의 이름을 외치려고 했다. 다리오, 드렉슬러! 어찌, 그럴 수 있었던가, 어찌 모두를 속여가고 있던 것인가. 왜 그 또한 속이려 했던 것인가. 어찌. 어떻게. 다리오 드렉슬러. 자네가? 멍청해지려는 머리를 겨우 붙잡고, 땀으로 가득 찬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고? 드렉슬러, 자네와 해온 모든 시간들이 거짓이라고? 그걸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회사와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똑똑 떨어지는 수액은 이미 떨어져 아무런 소리를 내어주질 않았다. 로라스는 호흡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 그랬던 듯이.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 그의 기억 속을 침식하던 공허함을 내밀어낸 것은 끝없던 배신감이었다. 그가 믿었던 이에게 내뱉는 배신감이다.

 

***

 

가장 먼저 한 일은 씻은 후에, 길어진 머리를 다듬는 것이었으며 움직이지 않은 팔과 다리의 근육을 쓰는 것들이었다. 굳어버린 몸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그에게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늘 했던 것은 뻔했으니까, 다시 몸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홀쭉해진 몸을 들고 걸어갈 수는 없었다. 어렵지 않게 제 이름을 외치는 것 까지 가능해졌다. 주위에서는 빠른 회복이라며 그를 축하하고 있었다. 처음과는 다른 차분함을 가진 로라스의 상태는 누가보아도 옳은 상태이었다.

바닥을 치는 구두 소리가 그를 마중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굳은 표정의 이들의 표정에 그는 얼추 생각하는 일들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다리오 드렉슬러는 이제 회사의 적이 되어있었다. 연구, 그래 발견하는 것들에 미쳐버린 그는 제 스스로 안타리우스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래, 그는 그 스스로도 말했었다. 회사에 관심이 없다고. 그런 그가 택한 방법이 제 스스로가 제 클론을 만들어서 그걸 조종하는 것이라니. 누가 보면 정말로 그라고 믿을 것 같이 그렇게 그를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모든 전말을 알고 난 후에 로라스는 지독하게 냉철한 태도를 보였다. 그 스스로가 다리오 드렉슬러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회사에 내비추었다.

 

로라스는 숨을 내쉬었다. 어떠한 말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 상부의 지시 따위는 이미 무시한 지 오래다. 그를 닮은 곳이었다. 숨을 막히지도 않고 그리고 아무도 그더러 무엇이라 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박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몇 번 던지고 밟으면 되는 일들이었다.

그를 가리고 있던 문을 열었다. 수 없이 많은 그를 똑같이 닮은 클론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몇은 눈을 뜨지 않은 듯이 축축한 액체를 바닥에 떨어트리면서 자리에 일어났다. 천장에서는 비상 시스템 가동이라며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다리오 드렉슬러를 완벽하게 닮은 수많은 클론들은 제 다리를 붙잡고 그의 팔을 잡는다. 그와 똑같은 목소리로 그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눈동자로 그를 바라본다.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나, 알베르토.”

수 없이 많은 목소리들 사이에서 들린 목소리를 알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향해 창을 찔러댔다. 그와 똑같은 목소리로, 그리고 바닥에 흐르는 것들은 정말로, 진실로, 그라고 믿어도 될 것만 같았다.

드렉슬러, 자네와 이런 일로 창을 겨룰 줄은 진정으로 몰랐네.”

어떠한 말도 듣지 않을 작정이로군.”

그건 자네가 나에게 했던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멍청하게, 서있는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있었는지! 그렇게 멍청한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손을 뻗어 그 목소리의 근원인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흔들리는 눈빛, 그래, 저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지. 언제나 늘.

어떤 생각? 언제쯤이면 네가 떨어질까란 생각을 했다.”

잔인하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그 목을 힘껏 졸랐다. 숨을 쉴 수 없는 저항이 그에게 일어났지만은, 그 것을 외면한 로라스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진정으로, 나는 자네에게 그런 존재였던가.”

숨이 막혔다. 한자 한자 내뱉는 것들이 거짓이라며 그를 그렇게 괴롭혔다. 드렉슬러, 자네와 만났던 순진했던 십대의 시간도, 모든 것들을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가. 로라스는 숨을 토해냈다. 서러운 숨들이었다. 그를 바라보던 따스했던 눈빛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경련하듯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죽이고싶지는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그것을 내려 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 긴 시간동안, 결국은 그를 결국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 이런 결말을 내렸을 것이다. 기절한 그의 몸을 질질 끌고 그 공간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를 맞이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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