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이퍼즈

벨져루이 - 무제

한여리 2014. 7. 25. 01:00


 

 빌어먹을! 얇은 이불 속에서 들린 소리는 낮은 목소리이었다. 그는 온몸이 얼어버려 며칠 전에 겨우 겨우 눈을 떴다. 그 애송이 같은 녀석에게 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더더욱 무거운 짐과 같은 이 홀든가의 차남인 벨져 홀든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는 온 몸에 감긴 붕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를 쉽게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 조차도 몰랐던 힘의 발현이 그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방심했다. 고작 빙결사라고 생각한 놈의 손에서 검이 생겼을 때, 무엇을 했던 것인가? 수치심에 온 몸이 떨려버려 눈을 감았다. 얼마나 수치스럽던가, 방심의 틈에서 애송이에게 당해버린 것이었다. 죽도록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었더라면 덜 수치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하염없이 손목에 붉은 기운 들이 남아있었다. 동상에 당한 이후로 이 꼴이 난 것이었다. 잘못했더라면 손목과 다리를 잘랐을 지도 모르는 말에 그는 조금은 절망스러웠었다. 다행히 멀쩡하게 붙어있는 양 손목과 다리에 감사를 해야 하는 건가, 씁쓸해 졌다.

눈을 떴나, 조금은 조심하지 그랬더냐.”

  그런 그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은 그것이 아닌 저 연민에 가득 찬 눈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라고 말해도 그의 눈빛이 연민에 가득했다. 형 또한 나를 이리 모욕하는 겁니까? 그를 노려보았다. 다이무스 홀든, 그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방을 나가는 것이 전부이었다. 자리에 일어나서 애꿎은 꽃병을 바닥에 내리 꽂았다. 나는, 벨져 홀든 이란 말이다! 아무도 나를 거역할 수도 나를 죽일 수도 없단 말이다! 깨지는 소리가 바닥에 퍼졌다. 가여운 사자가 포효를 하는 듯이 그는 소리 치고 울부짖었다. 어리석은 빙결사, 네 놈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지는 수치심이라는 것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손목과 다리의 치유가 어느 정도가 되었을까, 그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벨져 홀든이 별 것도 아닌 빙결사에게 당했다는 소식은 너무나도 크게 퍼져있었다. 그 스스로도 그 것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 이었다. 지독한 불쾌감. 그 불쾌감이 그의 몸과 정신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자기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겨놓고 그는 언제나 그 자신에게 가장 큰 자신감을 주었지만 그것이 그에게 약점이 되어줄 줄은 그 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어느새 자신을 홀든이라는 이름 속에 가둬버린 것은 아닐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그가 생각하여도 선명하게 그를 목을 졸라버렸다. 아니다. 스스로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아닐 것이었다. 검을 매만졌다. 그 것이 전부이었다

 캄캄한 도시를 지났다. 그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모든지 처리해버렸다. 그 스스로가 무력감을 느낀 그날을 지나, 그는 그의 의구심을 자극하는 어떤 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홀든과 프리츠와 무언가가 연관된 것이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사명감을 가져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그에게 패배 이후에 그의 기본이 되는 일에 집중하였다. 망설임이 없는 검에 어느 누구도 그와 대적하려는 자는 없었다. 손목이 아릿하게 아파오고 있었다. 이런 조금 무리한 건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재미없군, 고작 그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니, 그들에게 그가 남긴 말들은 수치스러운 말들이 가득했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보는 이들에게 그는 말했다. 알 이유조차 없는 버러지들이라고. 그는 더럽게도 오만한 사람이었다. 변할 것 없는 오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실례 작은 도련님.”

그는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의 손에 무엇인가 들려있었다.

넌 누구지?”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도련님은 관심이 없나 봐?”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도도한 입술 틈새, 그는 그녀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 하나 아는 이름이 지나쳐갔다.

아나벨라 쟝 마리에? 그대가 이런 꼴로 서있는 것도 우습군.”

감상은 나중에 하는 게 어떨까 도련님!”

  다가오는 그녀의 몸짓에 그는 침착하게 검을 내리 꽂았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 거냐? 그는 물었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기분 나쁜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녀는 사라졌다. 허탈감이 그의 자리에서 맴돌았다. 칼을 집어넣었다. 아나벨라 쟝 마리에가 저런 여성이었던가? 마치 다른 사람과도 같았다. 무엇인가를 확실히 본 것 같았지만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만났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모든 일의 근원이 되어줄 옥사나로 가는 것이 맞았다. 그 전에 그는 막내를 찾아야만 했다. 막내를 만나려면 지하연합으로 가야만 했다. 편지의 주소를 따라 가도록 했다. 막내는 지하 연합이라는 곳에 소속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 그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막내를 찾는다는 명목 하에 그를 만나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하연합과 가까이에 있는 술집에서 와인을 주문시켰다. 꽤 비싼데 괜찮겠습니까? 점원이 물었고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진한 붉은 빛의 루비 와인이 꽤 좋은 질이었다. 천천히 그 향을 음미하고 마시다 그를 주시하는 것들을 느꼈다. 로브를 입어 얼굴과 몸을 가렸다고는 하지만은 그것이 더더욱 관심을 끄는 것이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그는 와인의 값을 지불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던 순간 그 시선을 마주했다. 지독하게도 짙은 승리자의 눈빛이었다. 그 시선이 그를 주시하고 그 또한 그를 주시했다. 네 놈에게 결코 꿀릴 이유조차도 없다. 그는 그렇게 속삭이었다. 애초부터 그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모든 것을 해결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알기 전에, 그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박힌 얼음 조각을 빼내러 온 것이었다. 그와 그 사이에는 묘한 것들이 맴돌았다. 무엇이 방금이라도 터질 듯 했었다.

이글 홀든은 어디에 있나.”

  그가 내뱉은 말에 그는 대답했다. 그는 임무를 떠났다고. 그런가. 그렇다면 그에게 전해 주면 고맙겠군. 그가 내민 것은 하나의 종이이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 들였다. 영웅. 그 남자는 영웅이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것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영웅이었다. 그 남자가 아무리 홀로 술을 마셔도 그는 영웅이었다.

멍청하게 이 꼴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그가 말했다. 무엇인가 움찔한 것인지 그 작은 영웅은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눈빛에 어린 가장 연약한 공간이 그에게 박혀 있는 듯했다.

당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야.”

그가 내뱉었다. 술기운에 양 뺨이 붉었다. 언제나 차가울 것만 같았던 그 피부도, 그 생각도 그 행동도, 모든 순간 멈춘 것만 같은 시간 속이었다.

나를 모욕감에 빠트린 녀석이 나 외에 다른 이에게 작아지는 꼴은 꽤나 유쾌하지 않군.”

  큰 실망감이었다. 그의 등 뒤에 수많은 것들이 올려져있다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이글 녀석에게 그 것이나 잘 전달해주면 좋겠군. 그 남자에게 차갑게 쏘아 내렸다. 당신, 도대체 뭐야. 그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로브를 걷어 올렸다. 지독하게도 빛나는 은빛의 머리카락이 그 작은 영웅의 머리에 박힐 것이다. 그를 잊지 못하게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게.

벨져홀든이다.”

  그 애송이는 놀랐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돌았었고 그 작은 공간에서 차갑게 굳어버린 공기만이 그 자리를 맴돌았다. 습관적으로 검에 손을 데었다.

또 난동을 부릴 것인가, 내 사람들 앞에서?”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의 사람들. 재미가 없었다. 그의 분노는 그가 아니라, 그의 사람들에 있었다.

재미없군, 네 놈에게 이런 것을 바라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이글 홀든에게 그 것이나 전해.”

  그는 검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의 가슴 속에 박힌 얼음조각이 시시하게 녹아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작아진 남자 앞에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충고 하나할까 애송이? 누군가를 지키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것부터 하지 그래? 나는 온 몸에 상처 입은 녀석과는 싸울 이유조차 없다.”

눈물겹게도 아름다운 귀족 정신이군.”

다음번을 기약하지. 빙결사.”

  그는 그렇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기대했던 일은 결코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그 자리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루이스, 그 자리에서 그는 연약한 남자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해줄 수 없듯, 지독한 영웅의 고독을 그 자리에서 그는 보았던 것이다. 하나의 빈틈을 본 것이었다. 숨길 수 없이 모든 것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 박힌 것들은 조금씩 퍼져나간다. 그를 잊을 수 없게. 박혀버리게.

나를 옥사나로 데려다 주게.”

 

  모든 진실의 틈을 찾으러 그는 움직인다. 가슴에 얼음 조각을 박힌 채로.

 

 

-

7월 25일에 첫 문단 써서 12월 19일에 더 썼음 존나 나빳네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렉로라 - Let's talk about love  (0) 2014.08.13
쌍창 - 눈  (0) 2014.08.10
쌍창 - 미공개 단편  (0) 2014.08.10
쌍창 - 뫼비우스의 띠  (0) 2014.08.03
데샹마틴 - 무제  (0) 2014.07.2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