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들어오는 것은 그에게 전혀 이득이 되질 않는 것들이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시작되는 수업 그리고 이뤄지는 사교 행사와 언제든지 그를 죽일 것만 같은 세상의 환경은 그를 벅차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다가진 사람이라고 그가 그런 사람이라고 주위에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음을 그가 알고 있었다. 그는 덕목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 스스로가 정의했다. 그렇던 말 던, 그가 왕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넘치고 넘쳐있었다. 결국 그 기대가 그의 머리를 짓누르는 왕관의 무게가 되었다.
그가 열다섯이 되었을 때 쯤 이미 왕은 그를 태자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는 온 몸으로 느껴지는 시기의 무게 또한 가져야만 했다. 끔찍한 하루이었다. 누가 음식에 독을 타지 않았을까 하루 종일 노심초사하며 음식을 먹어야했으며, 자는 동안에 암투라도 벌여질까봐 늘 조심해야만 했다. 더 이상은 이것을 참아낼 수 가 없었다. 도망가자. 도망가는 게 옳을 것이야.
알베르토 로라스, 태자인 그가 한 최선의 선택은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성을 나서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이것을 못 참겠다고 생각했다. 도망 가버리자.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좋을지도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계산 했을 때 모든 시종들이 나올 수 없는 시간이 달이 저물어 해가 뜨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는 미리 구해둔 어두운 망토를 걸쳐 입었다. 누구든지 이런 결정을 수긍할 것이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창문에 매달아 놓은 밧줄을 튼튼하게 묶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들키면 다시 이 무게를 견뎌야만 했다. 더 이상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른 아이와 같이 웃고 떠드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더라면 애초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밧줄에 몸을 실었다. 스르르 내려가는 몸은 자유스러웠다. 거기 누구냐! 라는 고함소리가 없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것 같았다. 경비병의 목소리에 움찔 거렸고 뛰어가는 몸짓이 급해졌다. 미리 마구간에 준비해놓은 애마가 콧김을 불며 기다리고 있었다. 잽싸게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윽고 그가 도망갔단 사실은 성 안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애마가 사라지고 그 또한 사라졌기 때문이다.
“태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돌아오십시오!”
뒤에서 들리는 고함 아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로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더 급하게 말을 몰 뿐이었다. 이윽고 로라스가 도달한 곳은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고 모두가 신신당부한 숲이었다. ' 금지된 숲' 이라고 불린 그 곳은 마녀들이 산다고 신성한 마법사들의 공간이기에 들어갈 시에 재앙을 받는다고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알게 뭐람 , 로라스는 말을 몰아 금지된 숲 초입 나무 앞에 말을 세웠다.
“옳은 선택이십니다. 자, 저희와 같이 돌아가시죠.”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라고 숙부님께 전해주시죠. 같지도 않는 왕자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서 태자라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라고 전해주십시오.”
타계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올라간 것은 현명하게도 숙부이었다. 자동적으로 그는 왕위 서열이 숙부 다음이 되었고 숙부의 자식들에게 눈 따가운 존재가 되었다. 지겨웠다 몇 번이고 그를 죽이려고 하는 어린 고양이들은 점점 커서 그를 물고 있었다.
로라스는 결국 외침을 들은 척 만 척 금지된 숲에 몸을 실었다. 금지된 숲에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당장 나가라는 듯인 바람의 저항과 그리고 굶 줄인 숲의 강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조심히 말을 바라보았다. 순간의 생각으로 말을 죽여서 여기에 놓고 도망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애마의 등을 한번 쓸어 주었다. 또각또각 걸어 다니는 말발굽 소리만이 숲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음산하지만, 조용하고 목소리가 들리지만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반딧불의 빛이 꺼지기 시작했고 태양이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로라스는 그 태양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눈부신 그 태양을 ㅡ.
빛이 가득한 숲은 밤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밤에는 그렇게도 무서워 보이던 울창한 숲이 낮이 되어 바라보니 누구라도 바라보면 감탄사가 나올 아름다운 숲이 되어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누웠다. 축축한 바닥이 피부에 닿고 손가락에 닿았다. 언제더라 이렇게 누워본 적이?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이런 평화로움을 언제 느낄 수 있던 것일까 그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고삐가 풀린 줄도 모른 채 잠들고 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옆을 보자 말이 사라져있었다. 그 말까지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다. 돌아갈 때 유일한 수단이 될 아이었다. 다행히도 짧게 눈을 붙인 터라 그는 침착해질 수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아직 말발굽이 바닥에 남아있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고개를 내리고 침착하게 말 자국을 따라갔다. 말이 배가 고파서 도망 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애마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분명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어떤 일이 일어났을 거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야수들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았을까?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로라스의 몸에 묻어있는 포근했던 흙이 말라 달라붙었다. 흙을 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로라스가 얼마나 헤맸을까 그는 그의 말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하게 조용히 콧바람을 뀌던 그의 애마는 묶여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있는 곳은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던 숲에 나무로 지어진 집 한 채가 떡하니 자리 잡아있었다. 설마 진짜로 마녀인건가? 신중해지고 있던 찰나에 로라스는 등 뒤에 느껴지는 무언가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로 그가 전설 속의 마법사일까?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몸은 돌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가 마법을 걸어버린 것 같았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석화 마법이 천천히 발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도망자.”
석화 마법이 조금이라도 늦어지길 바랐으나 몸은 천천히 굳어지고 있었다. 왜 다짜고짜 마법 질이야! 라고 울컥할 뻔했지만 사실을 말해야만 했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기름과도 같은 존재이었다. 도망자, 그 것이 틀릴 수는 없었다.
“그 따위로 말하다가는 석상이 될 것 같은데?”
더럽게도 거만한 목소리에 그는 결국 말해버렸다. 이 빌어먹을 나라의 태자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몸에 걸려있던 마법이 천천히 풀렸다.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러냐? 그러기엔 협박을 한 사람은 생각 안합니까? 라고 따지기 전에 다가 온 손에 맺힌 마나에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도록 했다.
누군지도 모를 마법사는 집의 문을 열더니 뭐해 안 들어가고 라고 말했다. 그는 굉장히 로라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그가 손으로 몇 번 박수를 치자 멈춰있던 집안에 갑자기 활기가 생겼다. 불이 들어오고 청소가 되어있지 않는 공간들이 청소가 되어있었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더니 둥둥 떠다녀서 근사한 차 한 잔을 내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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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가자 로라스.”
그 유혹적인 말을 나는 고개를 저어 반대의 의사를 내비 출 뿐이었다. 그 순간의 그의 표정은 조금은 실망한 듯 멋쩍게 웃었다. 다짜고짜 그런 소릴 해서 미안하다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아니었다. 나 또한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것이 아니기에 나는 너의 제안을 거절하고야 만 것이다. 드렉슬러가 등을 돌린 채로 걸어갔다. 헬리오스 회사를 등지고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단 사실은 변할 수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 할 수 없어. 지겹게도 돌아오는 족쇄는 멈추지 않았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대부분의 능력자가 그렇듯 후유증이 시작되었다. 무리하게 신체의 능력을 한계까지 꺾어서 사용한 하늘을 거스린 죄, 그 죄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헬리오스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이라고 공표했다. 연합과 지겨운 싸움이 끝난 것이었다. 기적적으로 끝난 전쟁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갑옷을 입고 싸울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지키던 것도 모두 끝이 나버린 것이다. 거짓말처럼 더 이상 그의 등을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모든 힘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가볍다고 생각했던 마상창의 진실 된 무게는 감히 생각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몰려온 것은 아니, 다가 온 것은 한 통의 편지이었다. 그와 함께 했다는 것을 죄로 물어 뒤집을 인간들이었다. 웃음기가 저절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인가…? 모두 다 사라져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리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다가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너도 가는 거야? 아쉽네.”
“조노비치 양.”
아쉽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조노비치 양이 물었다. 무슨 일로 그만 두는 것이냐고, 헬리오스에 조금만 더 머물러서 민간들을 마주하는 법을 익히라는 듯 그녀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그녀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녀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는 것들 때문에 전쟁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놈도 가더니, 결국 회사는 텅 비게 되는 건가?”
“여긴 조노비치 양이 있지 않습니까? 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입술이 말라 왔다. 입술이 말라서 갈라져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거짓말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죽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더 포장하고 포장해야 이 더러운 이름을 지울 수 있을까? 타라는 알겠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갔다. 짐을 정리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 것 만 같았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가 되어버린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었기 때문이다.
괜스레 투구를 매만질 뿐이었다. 이것도 저 것도 모두 드렉슬러가 자신에게 해준 것이다. 모두ㅡ 그와 함께 임을 다짐 했을 그 순간부터. 가슴이 미어질 듯이 아파왔다. 결코 그와 함께할 수 없는 이 추악하고도 더러운 이 이름 때문에 그와 함께 할 수 없다. 그의 등 뒤를 지켜주겠노라 약속하고 다짐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편지를 찢어버렸다. 돌아오라는 간결한 말투는 아버님이 작성한 것이 분명한 것이었다. 간결하고도 무언의 압박이 담긴 그 강압적인 말, 늘 그런 식이었다. 엇나가는 것은 관두 거라, 제명당한 아이 따위와 함께 어울리지 말라는 그 소리를 어긴 것이 이렇게 잘못한 것일까?
고개를 무릎에 파묻을 뿐이었다. 그저, 그 것뿐이었다.
*****
“다시 하 거라.”
유년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로지 강압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각도가 틀어진다면 바로 날아오는 힘의 충격에 어린 몸으로 버티고는 했다. 오로지 완벽을 추구하는 강압적인 그 모습은 몇 번을 보고 보아도 이해 못할 법했다. 끝없는 힘의 충격이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개가 된 것 마냥 행동주의적의 사람이 된 것 만 같았다. 손을 들기만 해도 움찔거리는 공포는 아버지에게 당연한 만족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한 날이 끊임없이 다가왔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어린 맘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사람들이 바라는 가식적인 얼굴의 흔한 귀족가의 아들이 되어주는 것이 전부이었다. 그렇게 바라는 것만큼 그렇게 대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맘에도 들지 않는 여성과 더럽게도 긴 왈츠를 추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아들의 모습일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그녀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름을 말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숨이 막혀올 것만 같았다. 심장은 이미 두근거리다 못해 떨리고 있었다. 왜, 이런 숨 막힘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경련이라도 일어나는 듯 떨리는 입술은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알베르토, 로라스입니다.”
애써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부이었다. 속으로 나를 재고 또 재고 있겠지, 알베르토 가의 장남이라는 무기는 얼마든지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숨이 막힐 듯 풍겨오는 향수 향이 부담스럽다 못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벗어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만, 그만이라고 되뇌어 보아도 그만 둘 수 없었다. 나를 누군가 구원해주기를, 나를 누군가 지켜주기를, 그렇게 말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넓은 무도회장에 혼자가 되어있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아. 속이 쓰릴 만큼 아파오고 있었다. 이 문을 박차고 나간다면, 따귀가 날아오고 죽일 듯이 온 몸에 피멍이 가득 할 것이다. 이 찬란한 샹드리에 아래는 아름답지 않다. 그저, 빛을 비추는 공간에 불과하다.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시끄러운 소리가 샹드리에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주먹다짐하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고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누가보아도 싸움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파트너를 잡았던 손을 놓고 ㅡ 이 과정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영애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ㅡ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는 널 부러진 사람 하나와 위에는 와인을 뿌리는 사람이 있었다. 하필이면 쥐어 잡은 것이 레드 와인이었는지 바닥에 널 부러진 사람의 온 몸에는 붉은 와인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붉은 끼가 머물러있는 갈색의 머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일어나서 와인을 문질렀다. 끈적거려 라는 소리가 들렸다. 딱 보아도 날카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불렀어.”
간단한 이유를 말하고는 머리를 쓸어 넘기는 꼴이 어쩐지 미묘했다. 아버지, 저 사람도 결국은 아버지에 묶여있는 건가? 묘한 마음이 들었다. 뚝뚝 덜어지는 와인이 바닥에 흥건했다. 그의 걸음걸이마다 가득했었다. 주변이 이상하게 시끄러웠다. 주변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의 이름, 그가 왜 그런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그 길을 걷어차고 싶어 하는 특이한, 혁명가와 같은 사람이었다.
*****
그런 강렬한 인상을 가진 사내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기 전에 쉽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름,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걸음은 당당하고 굳세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그는 나를 모르고 지나치기 바쁜 사람 같았다. 다시 만난 것은 의외인 장소이었다. 사내자식들의 땀 냄새가 가득한 연무장에서 그를 만났다. 화려한 앞의 세계에서도 외면을 받던 이는 여기서도 외면받기를 충분했다. 소문에 의하자면 그는 굉장한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고는 했다. 선명한 눈빛이 그를 그렇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작 얼굴 한 번 본 것만으로 그와 아는 척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고 그도 그 곳의 일원처럼 녹아 내렸다.
그래, 그렇게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안차려?”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었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급하게 땀으로 미끄러운 창을 바로 잡았다. 우연치 않게도 그와 대련 상대가 되어있었다. 원래는 동기들끼리 대련 상대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짝이 없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홀수인 인원 탓에 짝이 없던 것은 로라스 그 또한 같았다. 그렇기에 기수가 다른 둘이 결국 대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깊게 찔러오는 드렉슬러의 창을 겨우 막아냈다. 의외로 괜찮은 것을 본 것인지 드렉슬러는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 같았고 로라스는 묵묵히 다음 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괜찮다 라는 평을 받았다. 아마도 그가 보기에 알베르토 로라스는 ㅡ 여리 여리하고 왜소한 체형 탓에 기사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던 것 같았다ㅡ 생각보다 괜찮은 훈련을 해온 듯 했다. 다만 체형이 길고 마른 편이라 어디서든 우습고 어이없는 평가를 받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 이전에 알베르토라는 가문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 듯 했다. 정작 그와 똑바로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말은 더럽게도 많았다.
그렇게 대련이 천천히 종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연습용 창을 옮기는 것으로 대련은 마무리가 되었다. 흐르는 땀이 식기도 전에 로라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드렉슬러가 이리저리 눈대중으로 뭘 보고 있는 가 했더니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갸웃 거리기도 전에 선배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탓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인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다.
“괜찮냐?”
“무엇을 말입니까?”
“저 새끼 마음에 안 들면 얘들 패놓곤 해서, 이상하게 멀쩡하군.”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실례가 안 되신다면 가보아도 되겠습니까?”
정중한 로라스에 말투에 그는 그렇게 비켰다. 귀족 나으리 님이 비켜달라는데 비켜줘야지, 약간의 비웃음이 달린 말이었지만 로라스는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저런 말을 하지 않는 자격지심에 빠져있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던가, 시답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릿하게 손목이 아파왔다. 생각보다 힘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묵직하게 휘두르는 창에 중심을 잃어 넘어 질 뻔했다. 만만하게 볼 사람이 결코 아니었단 것이다. 그런 그가 왜 그런 평을 받는지, 그런 취급을 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리오 드렉슬러, 그에 대한 말은 충분히 많았다. 가문에 먹칠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은 연회의 레이디들에게 들었던 소식이었다. 그녀들이 말하기를 결코 그와 서약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흔한 귀족 아가씨들이 기사의 서약을 거절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평판은 영 좋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그가 왜 가문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듣기로는 다리오 가문이 드렉슬러를 묶어 두려고 무리하게 결혼을 진행하다가 대놓고 영애에게 모욕적인 어휘로 결혼이 무산 되었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다리오 가문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그에게 선포했다고도 들었다. 귀족의 이름만 유지시키고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고 들었던 내용은 사실이었던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 하지만 부럽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문은 그저 자신의 이름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자신처럼 묶어내는 족쇄가 아닌, 그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그는 그와 다른 사람이었다.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그만의 길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는 그가 그는 부러울 뿐이었다.
*****
시간이 조금 지났다. 어색하긴 하지만 그는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까지는 올라갔다. 아무도 그와 대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고정적으로 대련 상대가 되어있었다. 그것에 있어서 로라스는 수긍한 편이었다. 다른 이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있는 자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지 절반 정도 막았던 것에 이어 이제는 공격과 수비를 바꿔도 괜찮은 포지션이 나온 것이었다. 나쁘지 않는 조합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것은 대련 이후이었다.
“너, 키 컸냐? 뭔가 각도가 높아진 기분인데?”
“그렇습니까? 조금 그런 것도 같습니다.”
드렉슬러의 말에 그는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다음에 보자는 형식적인 말로 드렉슬러가 답했다. 아직까지는 그와 그의 관계는 흔한 선후배 관계일 뿐이었다. 물론 그 또한 그렇게 선을 그었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사람의 구분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신과의 선 또한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오히려 심할 정도로 굴었다.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는 조금 더 후의 일이었다. 드라군이 헬리오스에 소속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렸다. 그 소식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따로 단장과 따로 독대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그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입김이 거기까지 간 것인가 로라스는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독대 이후에 알게 된 것은 그가 속해있는 조만 능력자들로만 구성해놓았단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묵묵하게 창을 닦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 또한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질감? 자유를 가지고 있는 그와 같다는 동질감이 그를 감싼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